주사제를 의약분업에서 제외시키는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해 잠잠하던 의약분업 파동이 재연될 조짐이다. 당사자간의 합의로 개정된 법이 또 바뀌게 되자 약업계가 강경하게 반발하고 나섰다.주사제 제외방침이 보도된 이후 대한약사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투표 결과 전체의 80% 이상이 분업 불복종 의사를 밝혔다.
대체조제 임의조제 등 종전의 관행으로 되돌아 가겠다는 응답에서 폭발적인 불만이 드러나 보인다. 시민단체들도 의약분업 근본취지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우리는 그런 반응이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본다. 의약분업 정신에 배치된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정부가 부작용 예측을 무릅쓰고 이 제도를 들고나온 것은 의약품 오ㆍ남용으로부터 국민건강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의약분업의 한 축이라 할 주사제를 분업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제도의 50%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 없다.
특히 주사를 맞지 않으면 치료 받은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한국인의 의료인식과, 의료계의 주사제 남용관행으로 보면 더욱 그렇다. 약을 구하기 어렵게 해 남용을 막겠다던 제도 도입 당시의 홍보논리는 어디 갔나.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주사제 걱정 처방률은 17.2%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주사제를 분업대상에 포함시킨 현행제도 아래서도 이의 3배가 넘는 55% 수준으로 조사되었다.
이런 사정에 주사제에 대한 제약을 풀어버리면 의약품 오ㆍ남용 방지는 헛구호가 되고 말 것이다.
약사법 개정 찬성론자들은 선진국에서는 의약분업 제도에 주사제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그 나라들은 의료관행과 국민인식이 우리와 달라 포함 여부가 문제가 되지 않을 뿐이다. 우리의 그릇된 관행을 고치는 데 참고할 사항이 아니다. 국민의 불편을 덜어준다는 명분도 마찬가지다.
불편이 문제라면 제도 자체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 항암제 차광주사제 등 꼭 필요한 주사제를 예외로 하면 불편은 최소화할 수 있다.
여러 차례 보험료를 올려 국민부담을 가중시킨 지금으로서는 보험재정난 완화도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1년을 끈 의료인 파업과 폐업 파동을 겪으면서도 우리가 이 제도를 지지해 온 것은 국민건강 증진이란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절반의 실패나 다름없는 약사법 재개정안은 국민건강에 해롭다. 정치권은 이해 당사자들의 논리에 흔들리지 말고 원칙과 대의에 따라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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