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발표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는 북미 기존 합의를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전제로, 합의 파기 경고가 아니라 합의 이행 촉구에 초점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미국 새 행정부 출범 후 한달간 침묵을 지켜온 북한은 미국 내 제네바 핵 합의 수정 움직임 등에도 태도 표명을 유보해 왔다. 그러다가 미사일 협상 검증, 재래식 전력 감축 등이 북미 관계 정상화의 새 조건으로 논의됐다는 한ㆍ미 외무장관 회담 결과 보도가 나온 직후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는 최근 북한 지도부가 미국의 동향이 바람직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판단했다는 신호로 보인다.
북한이 담화를 통해 미국에 던진 메시지는 ▦힘을 바탕으로 하는 대북정책 기조 ▦상호주의가 아닌 일방주의 구사 가능성 ▦기존 합의 수정 움직임 등에 대한 불만 표출이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조건부적이며 철저한 호상성(상호주의)'을 추구할 것이라며 강경자세를 요란스레 떠들고 있다"며 "만약 이 입장이 미 새 행정부의 정식 입장을 된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고 밝혔다. 대화 대신 힘을 바탕으로 한 정책 구사 가능성을 우려하는 지적이다.
북한은 또 "제네바 합의문과 조(북)미 공동코뮤니케를 통해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쌍방은 서로의 우려를 해결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며 "미국이 조건부 등을 운운하는 것은 결국 우리(북)가 먼저 완전무장해제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사일 발사 잠정 유예라는 조건을 받아들여 관계 정상화 협상에 나선 북한으로서는 '검증' 등 새 조건들을 받아들일 수 없고, 미국의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기존 합의를 변경할 수 있느냐는 항변이다.
북한은 또 완공 시기가 5년 연기된 경수로사업과 올해 미국의 중유제공이 불투명한 점 등을 거론하면서 기존 합의 이행으로 손해를 보는 당사자가 북한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배경에서 북측은 "미국의 새 행정부는 (미사일에 관한 북한의 진의에 대해) 심중히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지난해 11월 노동신문이 논평을 통해 "조미 코뮤니케는 외교문서"라며 국제법적 실효성을 강조하며 합의 준수를 강조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이번 담화에 대해 청와대는 "담화는 미국의 강경노선 구사 가능성을 우려하는 수준"이라며 "내달 7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는데 목적이 있다"고 반응했다.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의 방한이 러시를 이루고 정상회담 전 한미 조율작업이 진행되는 현 시점을 택해 담화를 발표한 점도 기존 합의 준수를 추구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고 덧붙였다.
또 발표 형식도 성명이 아닌 담화를 취하고, 경고 수위도 비교적 낮은 톤을 유지했다고 당국자들은 평가했다. 외교부도 "미국 새 정부와 정식 대화 채널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이 자신들의 진의를 전달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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