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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햇빛이 아까우면 꽃을 키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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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햇빛이 아까우면 꽃을 키우세요"

입력
2001.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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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시크라멘을 사 온 것은 사무실 창가의 햇빛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꽃을 갖겠다는 것보다 햇빛이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신문을 읽을 때 눈이 부셔서 계속 닫아뒀던 브라인드를 열어제치자 햇빛이 쏟아져 들어 왔다.사무실 안의 나무들이 햇빛을 반기며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더 많은 식물들을 햇빛 속에 두고 싶었다.

시크라멘을 양지바른 곳에 두면 초여름까지 꽃이 핀다는 것을 나는 작년에 처음 알았다.

그전에 내가 키웠던 시크라멘들은 겨울 한철 꽃이 피고 나면 잎까지 말라버려서 구근만 남았는데, 작년에 키운 것은 5월까지 꽃이 피었다. "얘, 너는 추울 때만 피는 꽃이란 걸 까먹었니?"라고 나는 그 예쁜 꽃들을 놀리기까지 했다.

시크라멘들은 지금 햇빛이 가득한 내 창가에서 싱싱한 꽃대를 뽑아 올리며 빨강 연분홍 진분홍색 꽃을 피우고 있다. 나는 문득 "햇빛이 아까워서 빨래를 해야겠다"던 할머니를 생각한다.

빨래줄 가득히 널려있는 이부자리 호청 위로 쏟아지던 햇빛, 호청 사이로 뛰어다니며 술래잡기하던 아이들, 그 시절로부터 멀리 온 나는 햇빛이 아까워 빨래를 하는 대신 꽃을 키우고 있다.

'아깝다'는 말의 묘미(妙味)에 새삼 감탄한다. 아까워서 남을 못 주겠다는 것이 아니고, 너무 아까워서 남들과 나눠야겠다고 말할 때 그 말의 참 맛이 있다.

혼자 먹기 아깝고, 혼자 듣기 아깝고, 그냥 흘려보내기 아깝다는 말속에는 귀한 것을 독점하거나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귀한 것을 독차지하거나 낭비하는 것은 죄다. 햇빛이 좋은 날엔 빨래라도 해서 햇빛을 고맙게 써야 한다는 것이 할머니 세대의 '아낌 정신'이었다.

오래 전에 들은 한 부인의 말이 생각난다. 한평생 속을 썩히던 아들이 처음으로 어머니의 용돈을 들고 왔는데, 그 돈을 쓰기가 너무 아까워서 매일 만져보기만 한다고 그는 말했다.

결국 그는 그 돈을 아들에 대한 기원을 담아서 '꿈나무 장학금'에 보냈다고 한다. 다른 자녀들이 주는 용돈은 잘도 썼는데, 그 돈은 차마 쓸 수 없을 만큼 아까웠다고 한다.

장관을 지낸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장관이 된 후 계속 행사에 참여하고 사람 만나느라고 바쁘게 지냈는데, 어느 날 취임 1년이 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식은 땀이 났다고 한다.

장관 자리에 앉아서 뜻 있는 일 하나 제대로 못하고 1년을 보내다니, 이대로 물러나게 되면 국민 앞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또 스스로에게는 무슨 핑계를 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다고 한다.

중요한 자리, 귀한 자리에 앉아서 그 아까운 기회와 시간과 힘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식은 땀이 났으면 한다.

특히 유치한 일로 싸우느라고 국민이 위임한 책임과 권한을 낭비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식은 땀을 줄줄 흘려야 한다. 국회의사당 전체가 식은 땀으로 젖어야 한다.

중요한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생은 귀하고, 하루 하루가 아깝다.

어린이, 젊은이, 중년, 노년 가릴 것 없이 하루 하루의 의미와 가능성은 크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아까워하자, 아까워하자, 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생을 낭비하는 것처럼 무서운 죄는 없다고 생각한다.

겨우내 브라인드로 창을 가리고 있는 동안 나는 그 아까운 햇빛, 그 엄청난 에너지가 바로 내 창 너머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것을 깨닫자 다른 세상이 열렸다. 따듯한 햇살 속에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내 사무실엔 활력과 기쁨이 살아났다.

시크라멘을 보면서 모처럼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 있다.

발행인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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