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원조를 받고 있는 터키 경제가 다시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이번에는 아흐메르 네스데트 세제르 대통령과 뷜렌트 에체비트 총리간의 감정섞인 정쟁이 불씨를 제공했다. 세제르 대통령이 19일 국가안보위원회 회의에서 "은행개혁 등 기득권층에 대한 개혁이 지지 부진하다" 고 비판하자 에체비트 총리가 격분,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양측이 설전을 계속하는 동안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정부의 부패척결 의지에 대한 비관론이 대두되면서 IMF가 지원키로 한 77억 달러의 추가 구제금융이 물 건너 갈 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터키 증권시장에서 주가는 이날 달러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운데 무려 14.6% 추락했고, 21일에는 18.1%(1,587포인트)라는 사상 최악의 폭락세를 기록했다. 정쟁으로 3일만에 주식시세의 30% 이상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이다.
금리도 봇물 터지듯 폭발했다. 21일 은행간 단기금리가 4,000% 까지 급등, 1999년 12월 IMF 외환위기 이전보다도 악화했다. 일부에서는 7,000% 가 넘는 선에서 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다.
금융시장이 소용돌이치자 총리실은 22일 구제금융 당시 IMF가 내건 조건 중 하나였던 자국통화 리라의 고정환율제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만성적 인플레를 잡는 데는 고정환율제가 효과적이었지만, 유동성 위기가 재발하고, 무역수지가 악화하자 시행 1년(2000년 1월) 여만에 백기를 들었다.
전문가들은 연 30% 선에서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던 인플레가 고정환율제 포기에 따른 통화가치 하락으로 다시 폭등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도 올해 목표로 잡았던 10%의 인플레율을 12%로 상향 조정했다. 이번 고정환율제 포기로 IMF는 신뢰도에 큰 손상을 입었다. 1999년 브라질 헤알화 폭락에 이어 터키가 구제금융 조건 중 핵심이었던 고정환율제를 포기함으로써 IMF의 위기처방이 다시 도마위에 오른 것이다.
외국의 외환위기에 불개입원칙을 추구해 왔던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도 혼선을 빚게 됐다.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중 미국 다음의 군사 강국인 터키의 경제위기는 미국의 대외정책에도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