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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한국인 이렇게산다] (7)남녀 구분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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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한국인 이렇게산다] (7)남녀 구분이 사라진다

입력
2001.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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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인기를 누리는 남자가수 조성모는 여자같다. 그의 목소리는 섬세하고 가늘며, CF에 나와서는 토라지고 앙탈을 부린다. 반대로 '테크노 여전사' 이정현은 사춘기 사내아이같다. CF에 함께 출연한 조성모를 완전히 압도하고 리드한다.90년대 중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저서 '메가트렌드 2000'에서 "21세기는 남녀를 구분할 수 없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명제를 던졌다. 그의 예언을 제대로 음미할 틈도 없이 세상은 변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성 정체성'이라는 옛날 기준으로 읽어내기 어렵게 됐다. 차림새의 모호함은 물론이고 하는 일, 쓰는 이름, 입는 옷, 심지어는 사랑을 나누는 것에서조차 남녀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

요즘 직업을 선택할 때 '금남' '금녀'라는 딱지에 얽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싱크로나이즈드 수영에 남자선수가 생기고, 남성보험설계사가 여성들을 제치고 보험왕을 차지하고 있다. 여자가 남자 영역의 문을 두드리던 시대를 넘어, 이제 남자들이 과감히 '여자의 일'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 피부관리사 박진수(37)씨도 이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는 고교 졸업후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정착할 수 없었다. 하지만 3년전 친구의 권유로 이 일을 배우면서 "여성같은 내 성격에 잘 맞는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여자 직업을 남자가 한다는 주변의 시각이 부담이 됐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하다보니 이제는 이 일 없이는 못살 것 같다"고 말한다.

여성들의 진출은 더욱 눈부시다. '바둑판의 철녀'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은 이창호(李昌鎬) 9단을 잇따라 격파하더니 지난해 조훈현(趙薰鉉) 9단으로부터 국수위를 빼앗았다. 그는 "남녀를 통틀어 세계 바둑계의 최고가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착착 실행에 옮겨가고 있다.

군과 경찰이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올해초 육ㆍ해ㆍ공군 소위임관자 가운데 여성이 205명으로 지난해 102명의 배로 늘어났다. 1997년 금녀의 벽을 깨고 공사에 49기 신입생으로 들어간 남미영(南美英ㆍ23) 생도는 4학년이 돼 대대장 생도로 임명됐다.

그녀가 대부분 남성인 400여명의 생도를 지휘하던 장면은 바로 미래의 군을 상징하는 모습일 지도 모른다. 공군전투기 조종사, 해군 군함 승선장교에 이르기까지 이제 여성이 없는 군은 생각할 수도 없다.

고난도 훈련으로 유명한 경찰특공대에도 지난해 여경특공팀이 창설됐다. 부산경찰청에서는 여성 오토바이 순찰대원이 생겨나 차를 세우고 스티커를 발부한다.

한국 철도사상 최초의 여성기관사, 해운 역사상 첫 여성 1등항해사도 등장했다. 철도청 용산기관사승무사무소 강은옥(姜恩玉ㆍ32)는 98년 철도대를 졸업한 뒤 2년간의 수습을 마치고 지난해 7월 처음 기관차를 몰았다. 현대상선 최선숙(崔善淑ㆍ27)씨는 지난해 5월 시험을 통해 1등항해사에 올랐다.

직업활동에서 남녀 구분이 사라지자 성차별적 의식은 저절로 깨져 나가고 있다. 이 같은 의식의 변화는 중성적 이름이 많이 나타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60년대 '자' '순' '옥' 등이 들어가던 여성의 이름은 80년대 들어서면서 한글이름의 등장으로 세련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녀의 차이는 존재했다. 그런데 요즘은 여자 아이에게 '성겸' '수교' '혜민' 등 좀처럼 성 구분이 가지 않는 이름을 많이 지어주고 있다. 아직 법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함께 사용하는 경향도 꾸준히 확산하고 있다.

50, 60년대 피에르 가르댕에 의해 시작된 유니섹스룩은 더 이상 유행이 아니라 한 시대의 문화현상이다. 청소년의 패션시장에선 유니섹스룩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기고 있다. 서태지가 컴백하면서 귀국장에서 보여준 유니섹스 모드의 삼지창 흑백무늬옷도 지난 한해동안 남녀 모두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사회 전반의 유니섹스화는 성문화마저 크게 바꿔놓았다. 동성애자임을 공공연히 말하는 풍토도 성 정체성의 퇴조와 무관하지 않다. 대학가와 인터넷에 동성애자 그룹이 계속 늘어나다 결국 홍석천의 '커밍아웃'으로 귀결됐다.

여성학자 진남희(秦南熙) 박사는 지난해에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여성의 참모습을 갖자' '순결한 마음을 갖자' '부덕을 높이자' 등 각급 학교에서 쓰던 성차별적인 교훈을 폐지토록 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남녀평등의 이념이 보수적인 분야에서까지도 침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여성학자들은 "남녀 구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겉모습에 불과하고 곳곳에 진입장벽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IT물결타고 여성CEO 증가세

최고경영자(CEO)하면 의례 남성이라는 통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최근 수년간 이뤄진 인터넷의 발전에 힘입어 여성 CEO는 이제 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다.

기술과 자본의 열세로 정통산업 분야에서 창업은 꿈도 꾸지 못했던 여성들이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제대로 된 도전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1993년 미국에서 박사를 딴 뒤 귀국했지만 남자 동료들이 속속 교수가 되는 7년동안 시간강사 신세를 면치 못했던 장성애(38)씨. 그는 "사이버 공간은 성차별이 없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지난해 여성을 상대로 하는 웹진을 만들어 인기사이트로 정착시켰다.

중소기업청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체 사업장 34만여개 가운데 여성 CEO가 있는 곳은 2.9%인 9,700여개이다. 그러나 주로 인터넷 분야를 다루는 벤처기업의 경우 여성 CEO가 경영하는 곳은 3.55%인 314개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정희자(鄭喜子) 오토피스엔지니어링 사장과 이영남(李英南) 이지디지탈사장 등은 80년대 우리나라에 벤처를 심었고, 이제는 스타 기업인 대열에 올랐다.

여성기업인으로는 처음 자신이 운영하는 베추얼텍을 코스닥에 등록시킨 서지현(徐知賢) 사장은 대표적인 신지식인으로 꼽히고 있다.

여사장들의 활약은 인터넷의 주소비자가 여성인 점과 관련이 있다. 롯데와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인터넷 회원 가운데 여성은 99년 42%와 39%였으나 지난해 57%와 56%로 절반을 넘어섰다. 주소비층인 여성의 특성과 변화를 잘 읽는 여성 CEO가 IT분야를 이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은호기자

l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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