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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日, '파트너십 선언'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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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日, '파트너십 선언' 잊었나

입력
2001.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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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부과학성은 지금 2002년 4월부터 중학교에서 사용할 교과서를 검정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관련된 내용을 대폭 삭감하거나 오히려 한껏 미화한 역사교과서가 검정에 통과할 것이 확실하다고 해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가 '다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여기서 '다시'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논란의 대상이 된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1982년에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가 '침략'을 '진출'로 표기한 일본 교과서에 일제히 항의함으로써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했었다.

이번에 검정을 받고 있는 역사교과서는 모두 8종이다. 이중에서 7종은 기존 교과서를 수정개편한 것이고 1종은 황국사관적 민족주의자들이 중심이 돼 집필한 '새로운 역사교과서'이다.

기존의 교과서도 종군위안부와 관련된 내용을 삭제하는 등 종래보다 개악의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우리를 더욱 경악케 하는 것은 '새로운 역사교과서'의 내용이다. 이 교과서가 서술한 근현대사의 특징과 성격만을 몇 가지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지배가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과나 반성 또는 보상이 전혀 필요없다는 게 이 단체의 주장이다.

둘째 한반도를 '일본에 들이댄 흉기'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이 흉기를 사전에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지키려 한 것은 침략이 아니라 정당방위였다는 것이다.

셋째 한국을 '잠만 자고 있던 나라'로 묘사한다. 즉 한국은 자주적으로 근대화할 수 없는 나라였기 때문에 일본의 지배가 오히려 한국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는 뜻이다.

넷째 일본이 비판을 받을만한 사실, 예를 들면 강화도사건 등과 같은 군사적 도발, 의병투쟁과 독립운동에 대한 탄압 등은 언급하지 않는다. 일본은 선이고 한국은 악이라는 차별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다섯째 일본의 식민지지배와 황민화정책의 실상 등을 무시한다. 또 관동대지진 때의 재일동포 학살에 대해서도 한마디도 서술하지 않는다. 이것은 역사의 말살이다.

국가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역사적 사실이라도 정확하게 서술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인식을 함양하는 데 필요한 사항이다.

자기 나라를 극단적으로 미화한다거나, 주변 여러 나라와 관련된 사실들을 자기 나라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잘못은 모두 다른 나라에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그리하여 일본은 1982년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을 계기로 교과서 검정에서 '근린 여러 나라를 배려한다'는 방침을 천명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역사왜곡'이 다시 발생한 것은 일본이 다시 '근린 여러 나라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우호협력이나 평화공존을 위해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한국정부는 일본과의 우호협력 관계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황국사관으로 회귀하려는 일본의 태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일본의 태도는 '후세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우호협력의 기초'라는 것을 명시한 '한일 파트너십 선언'(98년)을 무시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 국민들은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에 대해 엄격한 비판과 항의를 계속해야 한다. 특히 정부와 국민은 합심협력하여 한국인의 진정한 뜻이 일본인에게 직접 전달되어 건전한 역사인식으로 선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일본인이 한국의 역사를 짓밟고 더럽히는 역사인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양국의 참다운 공존공영은 공염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재정ㆍ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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