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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문화어사전 / '보세'-'관세부과 보류'가 '닮은꼴'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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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문화어사전 / '보세'-'관세부과 보류'가 '닮은꼴' 의미로

입력
2001.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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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보세(保稅):관세의 부과가 보류되는 일(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

■새정의

보세: 닮은 꼴, 비슷한 것용례: 걔, 심은하 보세야. 클놈은 클론의 보세.

197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한 '보세'라는 단어를 기성세대는 보통 '국내서 만든 외제상품'이라는 뜻으로 쓴다. 용산의 보세상가, 보세백, 보세옷등이 그런 용례. 그러나 이런 뜻풀이는 아직 사전에도 올라있지 못하다.

그런데 '보세'의 뜻은 다시 핵분열을 해서 이제는 '비슷한 물건'으로까지 진화했다. 며칠 전 노래방에서 겪은 일. 자판기에서 빼온 '칵스(CACS)'라는 상표의 무알콜음료를 보더니 중3짜리 조카가 하는 말.

"카스 보세네." 무슨 말이냐니까 "카스맥주랑 디자인이 비슷하잖아"라고 대답했다. 그 조카는 이어 옆에 있는 탤런트 양미라와 꼭 닮은 친구를 가리키더니 "얘 별명이 양미라 보세야"라고 말했다. 신세대 사이에서 '보세'라는 말은 '비슷한 것, 닮은꼴'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원래 '보세'는 원료를 수입해서 완성품을 수출하는 가공무역에서 그 물건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제도를 일컫는 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부터 널리 활용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보세상품 가운데 문제가 있는 것은 시중으로 흘러나와 판매되었다.

그 덕에 옷이나 액세서리 보세상품을 전문으로 파는 보세상가가 서울 곳곳에 형성됐다. 국내 디자인과 외국 디자인의 차이가 현격하고 외국물건의 자유로운 수입이 불가능하던 70, 80년대에 보세상품은 비록 국내서 만들었지만 비싸지 않은 값에 맛볼 수 있는 외제 명품이었다.

나중에는 아예 '보세'를 가장한 국내 상품까지 등장했다. '보세'가 '명품의 모조품'이란 뜻으로 확장된 것. 그래서 동대문시장에서 옷가게를 하는 임주희(서울 구로구 독산동ㆍ45)씨는 "지금까지 '보세'가 외국어인 줄 알았다"고 말한다. 요즘 동대문 상가 상인들에게 '보세'는 "값은 싸지만 명품의 분위기나 디자인을 낼 수 있는 상품"으로 통용된다.

n세대의 '닮은꼴'이라는 뜻의 '보세'도 여기서 나왔다. 물론 '조잡한 복제'는 안되고 '그럴싸한 모방'을 뜻한다. 김정균(서울 용문고1)군은 "사람한테 쓸 때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닮았을 때만 쓴다"고 말했다.

원래 보세상품이 명품을 원본으로 삼듯 TV속의 스타들은 모든 '보세'들의 원본(原本)이다. 그래서 새로운 '보세'는 대중문화에 압도당한 현대인들의 빈곤한 상상력을 드러내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지금 한국인들이 쓰는 새로운 말을 '21세기 문화어사전'이 알려드립니다. 새로운 문화어를 알고 싶거나 소개하고 싶으신 분은 한국일보 여론독자부로 연락을 주십시오. 전화 (02)722-3124 팩스 (02)739-8198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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