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고참 요원이 15년 동안이나 러시아를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한 것으로 밝혀져 미국이 온통 떠들썩하다. 최근 수년간 미-러간 스파이 사건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번 사건은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양국 관계에 미묘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루이스 프리 FBI 국장은 20일 FBI에서 27년간 방첩임무를 맡았던 로버트 필립 핸슨(56ㆍ사진)을 지난 1985년부터 '라몬'이라는 암호명으로 구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와 그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에 미국의 국가기밀을 빼돌리는 대신 돈을 받아온 혐의로 체포,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핸슨은 주로 미국내 러시아 정부기관에 대한 첩보수집 활동을 담당했으며, 한때 국무부에 근무하기도 했다.
핸슨은 1989년 3월 KGB 요원에게 미 정부의 이중간첩 운용계획, CIA 요원 충원공작 및 KGB 활동분석 보고서를 제공하는 등 여러 차례 국가기밀을 빼돌린 것과 1985년 미국을 위해 이중간첩으로 일하고 있던 KGB 요원 3명의 명단을 제공한 것 등 크게 두 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워싱턴 주재 구 소련 대사관에서 미국의 이중간첩으로 일하고 있던 KGB 요원 3명은 핸슨이 신원을 알려준 후 모스크바로 귀환 조치돼 2명은 처형됐고 1명은 현재 복역중이다. 핸슨은 뉴욕시 FBI 지부 대외방첩 책임자로 근무하던 1985년 10월 돈을 목적으로 KGB측에 우편을 보내 간첩활동을 자원했다. 지금까지 러시아측에서 65만 달러의 현금과 다이아몬드 등 140만 달러 어치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핸슨은 FBI 요원답게 용의주도하게 활동해 러시아측 담당자도 그를 'B'라는 이니셜로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신원을 몰랐으며, 러시아측이 그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체포 당일이었다고 프리 국장은 밝혔다. 그는 러시아측 요원을 절대로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았으며, 무인 포스트를 통해 암호 메시지와 금품을 전달 받는 등 치밀하게 활동했다.
18일 버지니아의 한 공원에서 비밀정보뭉치를 떨어뜨리다 현장에서 붙잡혔는데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최고 사형과 받은 금품의 2배인 280만 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핸슨의 간첩활동 사실은 미 정보당국이 입수한 KGB 문서를 통해 노출됐으며, FBI는 지난해 말부터 수사를 벌여왔다. FBI 요원이 간첩혐의로 체포된 것은 이번이 3번째이다.
미국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프리 국장은 "핸슨은 미국 정부 내에서 가장 민감한 최고급 비밀에 접근했다"면서 국가안보상의 피해 조사와 FBI내 보안절차 점검을 위해 특별위원회를 가동했다고 밝혔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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