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의 국회 정보위서는 안기부 선거 자금의 출처를 놓고 여야가 격돌했다. 회의장 밖으로 의원들의 고성이 쉴새없이 새어나왔고, 정회 도중 휴게실에서도 여야간 설전이 이어졌다.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된 탓에 여야 의원들이 정회 중에 실시한 언론 브리핑은 사실 관계 조차 엇갈렸다.
◇여당 단독 브리핑과 야당 항의
민주당 간사인 문희상(文喜相) 의원이 오후 4시께 회의실에서 나와 임동원(林東源) 국정원장의 보고 내용을 단독 브리핑 했다. 뒤늦게 이를 안 한나라당 의원들은 책상을 치며 거세게 항의, 4시40분께 회의가 정회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정보위 브리핑은 여야 간사의 합의 아래 이뤄지는 게 관례인데 문 의원이 일방적으로 여당에 유리하게 언론에 발표했다"며 문 의원과 김명섭(金明燮) 위원장의 사과를 촉구했다. 문 의원은 속개된 회의에서 사과했다.
◇국정원 보고와 여야의 아전인수 해석
▦ 안기부 계좌에서 1995년 5월부터 96년 1월까지 19회에 걸쳐 1,197억원이 인출됐고, 이를 입증하는 44장의 수표를 갖고 있다
▦ 외부 자금의 유입은 없다
▦ 93~95년 당시 분기별로 예산을 미리 배정받아 금융기관에 예치해 이자가 발생했고, 불용액도 있다
▦ 95, 96년도 안기부 세출 예산의 집행 및 결산에는 문제가 없다
▦ 정치권으로 유입된 예산은 불용액과 이자로 충당한 것이다.
이상이 임 원장 보고의 골자.
여야 의원들은 임 원장의 보고 내용을 아전인수격으로 전달했고, 또 상반되게 해석했다.
민주당 문희상 의원은 "국정원의 설명을 미루어 볼 때 안기부 예산을 당시 신한국당에 선거 자금으로 주고 이자놀이를 해서 메웠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상수(李相洙) 의원은 "당시 신한국당에 들어간 돈은 안기부 계좌에서 나왔고, 계좌에 유입된 돈은 모두 그 뿌리가 국고수표이며, 제3의 자금은 들어간 적이 없다"고 확인한 뒤 "예산을 빼내 선거 자금으로 지원했으니 이게 간첩 잡는 돈을 쓴게 아니고 무엇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상천(朴相千) 의원은 "1,197억원의 조성 과정 등이 대부분 확인됐고, 아직 확인하지 못한 금액은 13억원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국정원의 설명"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반면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은 "당시 안기부 계좌가 가ㆍ차명 계좌를 포함, 수천개였기 때문에 95~96년에 인출된 돈에는 불용액과 이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금 등이 뒤섞여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안기부의 당해 연도 예산이 아닌 만큼 간첩 잡는 돈 운운하는 여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국정원은 당시 안기부가 관리한 계좌가 8,000여 개에 이른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같은 당 김기춘(金淇春) 박종근(朴鍾根) 의원 등은 "1,197억원이 불용액과 이자로 충당됐다는 것도 국정원의 일방적 주장일 뿐, 국정원은 연도별 액수별로 명확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이윤성(李允盛) 의원은 "유출된 돈은 가ㆍ차명 계좌로 운영된 안기부 비자금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반박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국정원은 자금의 유출만 말할 뿐 이 돈이 어떻게 강삼재(姜三載) 의원 손에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권 대변인은 또 "국정원 관계자들은 그만한 금액의 불용액이 조성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서 "모든 의혹을 특검제로 밝히자"고 요구했다.
한편 박종웅(朴鍾雄) 의원은 "임 원장의 발언은 검찰 수사가 끼워맞추기 식으로 진행됐다는 반증"이라며 "따라서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소환 조사가 정치보복이었음이 드러났다"고 비난했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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