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년 2월21일 러시아의 소설가 겸 극작가 니콜라이 바실레비치 고골리가 모스크바에서 죽었다. 43세였다.고골리의 가장 뛰어난 작품은 피카레스크 소설 '죽은 넋'일 것이다. 각처의 지주들을 찾아 다니며 죽은 농노들을 사서 이들을 살아 있는 것처럼 등기하고 그것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 하는 협잡꾼의 편력을 그린 이 소설은 그러나 제1부만 마무리되었을 뿐 나머지는 부스러기 글들로만 남아 있다. 그래서 오늘날 고골리라는 이름은 주로 희곡 '검찰관'과 중편소설 '외투'와 관련해 기억되고 있다.
5막 희곡 '검찰관'은 도박으로 노자(路資)를 날린 건달 청년이 정부에서 파견한 암행(暗行) 검찰관으로 오인되자, 그 기회를 이용해 지방의 탐관오리들을 실컷 곯려주고 자취를 감춘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거기 묘사된 러시아 지방 관료들의 부패상 때문에 지배 계급의 반발을 불러 일으켜, 고골리는 결국 서유럽으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외투'는 중년의 가난한 말단 공무원이 어느 겨울 큰 맘 먹고 산 외투를 노상 강도에게 빼앗긴 뒤 그것을 되찾기 위해 벌이는 필사적인 그러나 허망한 노력을 묘사하고 있다.
'외투'는 고골리가 자신의 작품 세계의 한 면을 요약한 '눈물을 통한 웃음'을 전형적으로 구현하고 있다고 할 만한데, 도스토예프스키가 "우리는 모두 고골리의 '외투'에서 태어났다"고 말했을 만큼 그 뒤의 러시아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고골리는 중국 작가 루쉰(魯迅)에게도 흔적을 남겼다. 예컨대 루쉰의 대표작 '아큐정전(阿Q正傳)'과 '광인일기(狂人日記)'에는, 자신을 스페인 왕이라고 공상함으로써 현실의 굴욕감을 이겨내려고 하는 하급 관리의 이야기를 담은 고골리의 일기체 소설 '광인 일기'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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