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DNA 검사가 퍼지고 있다. 질병 진단이나 친자 확인 등 비교적 알려진 검사가 아니다. 성격과 체질, 수명, 치매 가능성, 지능, 궁합까지 알려준다는 신종 DNA 검사다. 최근 몇 달 사이 벤처를 표방한 DNA 검사 업체 10여 개가 속속 생겨나 어린이 등을 상대로 본격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인성, 체질 등을 DNA로 판별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일"이라며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다. 또 12일 인간게놈지도 초안이 발표돼 유전자 수가 약 3만개로 예상(10만개)보다 크게 적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유전적 결정보다 환경적 영향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올 1월 서비스를 시작한 '영재연구센터 G사'는 주로 미취학 아동의 인성ㆍ지능 검사와 육아 상담을 한다. 입 안 세포를 약간 긁어내 DNA를 분석하면 호기심, 지능, 체력, 치매, 흥분, 롱다리, 중독, 폭력성 등 17가지 항목을 검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17종 유전자 검사와 사상체질, 인성설문조사를 합친 패키지가 89만원. 10여 명의 텔레마케터들이 서울 강남 지역의 유치원, 학원 등을 상대로 판촉활동을 벌이고 있다.
D사는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는다. 체력, 비만, 호기심, 장수, 당뇨, 폭력성 등 검사항목은 거의 비슷하며 유전자 당 1만 5,000~2만원의 검사비를 받는다. 인터넷에서 검사항목을 클릭하고 주소를 적으면 검사 키트를 우송해 준다.
Y사에서 독립법인화한 W사와 I사는 각각 비만, 인성관련 유전자를 사업화해 청소년용(9개 유전자 39만 6,000원)과 성인용(2개 유전자 12만 1,000원) 패키지를 판매한다. Y사는 지난 해 한 케이블TV와 공동이벤트를 벌여 100명을 검사했다.
O사는 이러한 업체들에게 유전자 검사 컨텐츠를 제공하는 회사. 헤드헌터 업체인 I사, 직업교육 알선 기업인 A사 등과 협력해 DNA 검사 결과를 구인 구직에 활용한다.
또 비만클리닉- 보험회사와 제휴해 다이어트에 실패하면 5년 뒤 보험금을 돌려주는 100만원짜리 DNA다이어트상품 등도 개발중이다. 이 '신종 DNA 벤처'들은 지난 해 하반기부터 한 회사에서 퍼져 나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유전자 인성검사는 혈액형으로 성격을 알아보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고 일축해 논란의 여지가 많다. 삼성서울병원 진단병리학과 김대식(金大植) 박사는 "현재 DNA검사는 유전병, 암, 일부 바이러스성 질환을 진단하고, 법의학적으로 범인이나 친자를 확인하는 데 활용할 뿐 인성 판정에 적용하는 병ㆍ의원이나 교육기관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종 DNA 벤처들은 "국내ㆍ외 연구 결과를 근거로 했다"는 주장이다. 유전자검사를 체계화한 O사 관계자는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수백명을 조사해 본 결과 분명 상관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상체질검사, 인성설문조사와 종합, 보완하면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G사 관계자는 "가능성이라 하더라도 중독성, 폭력성 여부를 알 수 있다면 육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유전자 검사 어디까지 왔나
유전자 검사는 어디까지 왔는가? 현 연구 단계에서 유전자는 무엇을 말해주며, 유전자 검사가 얼마나 치료에 이용되고 있는가? 최근 인간게놈 지도 초안이 발표됨에 따라 인간의 질병 치료에 대한 장밋빛 전망들이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가장 많이 연구가 진행된 것은 암 관련 유전자이다. 병원에서 진단을 돕기 위해 검사한다. 그러나 발병 가능성을 미리 알려주는 유전자는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성격, 수명 등 유전자들은 더욱 초보적인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다.
▽ 논란 중인 유전자들
호기심, 중독성, 우울증 등이 뇌 호르몬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호기심유전자(D4DR), 중독유전자(DRD2A, DRD2B), 우울증ㆍ폭력성 유전자(세로토닌) 등이 바로 뇌 호르몬인 도파민, 세로토닌 등과 관련이 있다.
도파민수용체 DD형은 호기심이 강하고, DM형은 보통, MM형은 내성적이고 절약 정신이 강할 수 있다는 결과가 있다. 세로토닌 유전자는 우울증과 폭력성향을 가질 가능성이 있거나(SS형) 없다(LL형). 치매의 경우 콜레스테롤 대사에 관계되는 ApoE 유전자를 검사해 e4형이 한두개 나타나면 발병 가능성이 있다, 높다고 판별한다.
그러나 '유전적 변이가 곧 기능장애인가'가 논란이다. 치매정복창의연구단 단장 서유헌(서울대 의대) 교수는 "뇌 속 세로토닌 함량이 떨어지면 우울증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유전적 변이가 없어도 다른 원인에 의해 세로토닌 양이 바뀐다. ApoE 유전자의 e4형이 치매의 위험 인자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다른 원인이 많아 미리 발병 가능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며 "유전적 변이와 발병의 상관성을 규명하는 국내 기초 연구가 아직 없다"고 말했다.
박찬규(과기원 생물과학과) 교수는 "유전자가 늘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사람의 성격에는 여러 유전자들이 복합적으로 관련되나, 우위에 있는 유전자나 법칙이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격과 유전자 변이의 상관성이 연구되고 있으나 관련성이 5~7%로 통계적 오차범위 내에 있어 논란에 머물고 있다"며 "연구 성과가 나오려면 5~10년쯤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보조진단 수준의 유전자검사
병원에선 환자에 대한 보조 진단을 위해 유전자를 검사한다. 친자ㆍ본인 확인용 DNA감식 외에 암, 유전병 관련 유전자 100~200종이 대상이 된다. 유전병인 루 게릭 병, 여러 암에 공통적으로 관련되는 원인 유전자나 억제 유전자, 항암치료 효과를 알아내기 위한 항암대응 유전자 등이다. 그러나 암에 걸릴지 미리 알려주는 검사가 아니라 이미 발병한 암환자를 대상으로 진단을 돕기 위한 것이다.
병을 예견할 수 있는 DNA 검사는 유방암 등 극소수다. BRC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은 65세 이전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75%라고 보고돼 있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건강한 여성들이 검사를 받아 변이가 발견되면 미리 절제수술을 받는 경우가 있다.
보험회사는 이 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 대해 보험 가입을 거부해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검사 결과 대책이 있나
이처럼 '가능성'을 타진하는 정도이다 보니 DNA 검사의 분석 결과에 따른 대책도 현실적으로 모호하거나 상식 선에 머물고 있다. 예컨대 골다공증 유전자 검사에서 유전자변이가 발견된 경우나 없는 경우 처방은 똑같이 "우유와 칼슘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고 올바른 자세로 앉고 관절을 무리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는 정도다.
DNA 벤처인 I사 관계자는 "체력 유전자가 지구력, 심폐 기능과 관련 있으므로 적절한 운동법을 알려주고, 치매 유전자가 밝혀진 경우 두뇌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토록 유도하고 있다. 이 정도 판별도 아예 모르는 것보다는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DNA 검사의 유용성 여부를 떠나 개인의 유전정보를 어떻게 보호하고 평가할 것인가도 심각한 문제다. G사의 게시판에선 이러한 불안을 읽을 수 있다. 주부들은 "검사를 통해 적성, 소질, 질병까지 예측할 수 있다면 아이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지 않느냐. 검사 결과대로 아이를 교육시킨다는 게 불안하다"는 의견을 올리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김대식 박사는 "유방암 발병 유전자를 갖고 있어도 이 중 25%는 발병하지 않는데 발병가능성을 일찍 알려줌으로써 끼치는 심리적 부담과 좌절감, 스트레스 등 폐해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놈프로젝트의 꿈-DNA칩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피 한방울(또는 상피세포)을 DNA칩에 떨어뜨려 각종 질병 가능성, 성격, 지능을 예측하려는 것은 사실상 게놈프로젝트가 꿈꾸는 유토피아다. 물론 환경에 의한 지능, 성격, 질병의 영향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DNA칩은 수백~수만개 유전자(단편)를 칩에 심어 한꺼번에 검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칩에 심을, 즉 기능이 밝혀진 유전자가 적다는 사실이다. 현재 수준은 유전자 기능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용으로 DNA칩을 활용하는 정도다.
결국 DNA칩이 만들 유토피아는 질병 관련 유전자들이 먼저 밝혀지고, 복잡하고 광범위한(정상인과 환자, 발병 원인과 증상, 증상과 치료법 등의 상관관계를 종합하는) 통계DB를 완성하는 두 가지 과제가 선결돼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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