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은 대박의 신화와 쪽박의 괴담이 혼재해 있는 정글이다. 증시는 '시장경제의 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의 악의 꽃'인가. 관점에 따라 180도 다른 평가가 나오는 것도 증시가 갖고 있는 '정글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증시는 빈털터리 투자자를 거부(巨富)로 만드는 마술을 부리기도 하지만, 노벨상수상자 등 세계적인 명망가를 거지로 만드는 악마적 근성을 갖고 있다.
경제학원론의 화폐수량설로 잘 알려져 있는 어빙 피셔 교수는 미국 예일대 재직시절 주식투자로 큰 돈을 벌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재테크의 귀재' 피셔 교수는 자신감에 도취된 나머지 1929년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지금 주식을 살 때다.
계속해서 사라. 나도 산다"고 주식투자를 권유했다. 뉴욕증시가 대공황으로 송두리째 허물어지기 바로 1주일 전이다. 피셔 교수는 빈손이 되고 말았다. 피셔 교수의 권고에 따라 많은 재산을 투자했던 예일대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98년 뉴욕 증시를 뒤흔든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은 미국 정부당국과 스웨덴 노벨위원회까지 궁지로 몰아넣었다.
파생상품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공동수상한 미국MIT대의 마이런 숄즈 교수와 로버트 머튼 교수가 자신들을 유명하게 만든 바로 그 파생상품이론 때문에 쪽박을 찬 것이다.
숄즈 교수와 머튼 교수는 월가의 전설적인 펀드매니저 메리웨더와 손잡고 LTCM을 만들어 엄청난 자금을 끌어 모았다. 일반 개인투자자는 물론이고 거대 투자은행들까지 경쟁적으로 돈을 맡겼다.
그러나 LTCM은 러시아 모라토리엄(지불유예조치)으로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손실규모가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월가의 금융시스템에 치명상을 줄 수 있는 금융사고였다.
미국 정부당국과 연준(FRB)이 월가의 금융기관을 동원, 36억5,000만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함으로써 가까스로 수습해야 했다.
금융전문가들은 이런 금융사고가 날 때마다 "주식투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대박의 신화보다는 쪽박의 괴담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증시만 살아나면 만사가 해결될텐데.." 최근 정부와 여당이 증시활성화를 위해 안달하는 모습이다.
급기야는 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우체국보험기금 등 소위 4대 연ㆍ기금까지 동원하려 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연ㆍ기금의 자산운용과 관련된 각종 법령을 개정키로 했다.
연ㆍ기금은 어떤 돈인가. 봉급생활자 자영업자 등이 노후의 안녕을 위해 쌓아놓은 '곗돈'과 같다.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에서는 노후 생활의 '마지막 보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증시가 발달된 미국에서도 사적(私的) 연금의 경우 주식투자 비중이 50%이상이지만, 공적(公的) 연금의 경우 주식투자가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되는 사회보장연금에 대해 주식투자를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자금운용의 기준이 첫째도 안정성, 둘째도 안정성이다. 수익성은 다음 문제다. 미국의 사회보장연금은 운용자산의 99.9%를 재무부채권(TB)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 당국자들도 일반 국민들에게 주식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곤 한다. "주식투자는 여유 자금으로 하라. 생계 자금으로 주식투자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한국의 4대 연ㆍ기금은 자금의 성격상 여유 자금이라기 보다는 생계 자금에 속한다.
연기금의 증시투자확대는 보다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이백만 경제부장
mill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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