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11시 인천 서구 가정동 대우자동차 직원 임대아파트. 집배원이 다녀갈 때마다 얇은 흰봉투에 담긴 내용증명 우편물이 한통씩 날아 들고 신분증을 내밀며 서명하는 근로자 가족의 어깨는 한숨으로 내려앉았다.320세대 중 3분의1이 넘는 108세대에 이날 대우차가 보낸 근로계약 해지 통지서가 전달됐다.
어린 딸의 시린 손을 잡고 부평공장에 모인 해고 근로자들의 눈빛에는 '체념'과 '분노'가 뒤섞였다.
수렁에 빠진 회사를 돌아보면 새 직장을 찾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묵묵히 차만 조립해온 생산직을 하루아침에 내치는 처사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삭발한 한 직원은 "일만 한 죄 밖에 없다.
재취업 알선을 한다지만 인터넷ㆍ컴퓨터도 모르는 우리에게 막노동 밖에는 없지 않느냐"며 한숨지었다.
대우차의 대규모 정리해고는 지금까지 말로만 구조조정을 외치며 방만한 경영과 눈가리기식 자구를 해온 부실기업이 '막다른 골목'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30년 동안 기름밥을 먹어온 생산직 근로자 1,750명과 가족들이 무더기로 차디 찬 거리에 내몰렸다.
근로자 개인과 가족에게는 엄청난 날벼락이겠지만, 매년 2조원이 넘는 은행 돈을 쓰고도 부실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부도 기업이 갈 다른 길도 없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되돌아보면 대우차 사태가 불거진 1999년 말부터 지금까지 대우차 경영진, 채권단, 정부, 노조 모두 차선의 기회를 마다한 채 미봉책으로만 일관, 회생의 기회를 놓쳤고, 그 결과 최악의 궁지로 내몰린 셈이다.
지금도 자산매각이나 외자유치 등 구조조정 흉내만 내는 수많은 부실기업에게 대우차의 정리해고는 구조조정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임을 경고하고 있다.
김호섭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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