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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강한 여당'과 매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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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강한 여당'과 매 전략

입력
2001.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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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치 위에 홀연 매들이 하늘을 가르고 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강한 미국'을 새 이념으로 내거는가 싶더니 이스라엘에서는 초강경파 정치지도자인 샤론이 총리로 당선되었다.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민주당의 새 총재도 '강한 여당'의 기치를 높였다. 왜들 갑자기 강한 이미지를 원하는 것일까.

게임이론은 드물게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 두루 적용되는 논리체계 중의 하나이다.

현대컴퓨터과학의 창시자이기도 한 수학자 노이만(John von Neumann)이 정립시킨 이론으로 특정한 규칙을 따르는 게임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찾아내는데 쓰인다.

도박장에서 어떻게 하면 돈을 딸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도 사용될 수 있음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여러 상황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이다.

게임이론 중 동물들의 행동에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바로 매-비둘기 게임이다. 매-비둘기 게임의 초점은 매에 맞춰져 있다.

사회의 성원들이 대부분 싸움을 잘할 능력도 없고 평화를 사랑하는 개체들일 경우에는 매 전략을 쓰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리 힘들이지 않고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둘기 전략에는 그리 큰 피해는 따르지 않지만 이득 역시 크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매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노리게 된다. 문제는 매가 또 다른 매를 만났을 때 발생한다.

싸움이 길어지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매 전략은 얻는 것도 많을 수 있지만 잃을 것도 만만치 않은 위험한 모험이다.

이스라엘이 강경파 총리를 선출하자마자 그의 정책이 뚜렷하게 밝혀진 것도 아닌데 이미 유혈사태가 빈번한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결코 비둘기 전략을 택할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동물행동학자들은 벌써 수십 년간 스코틀랜드 앞 바다에 있는 럼(Rhum)이라는 작은 섬에서 붉은큰뿔사슴들의 생태를 연구하고 있다.

전형적인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수컷들은 늘 다른 수컷들과 힘겨루기를 하며 암컷을 얻는다. 이 같은 행동은 게임이론으로 비교적 잘 설명된다.

아직 나이가 어려 다른 큰 수컷들과 경쟁하기 어려운 수컷들은 어쩔 수 없이 비둘기들이 된다. 그러나 그들도 언젠가는 매가 되어야 한다. 후세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면.

처첩들을 거느리고 있는 수컷과 그로부터 암컷들을 빼앗으려는 수컷간의 싸움은 매와 매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가 겪을 피해가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이들 수컷들은 바로 싸움에 돌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가늠하기 위한 전초전을 갖는다. 서로 소리를 지르며 상대의 힘과 건강상태를 측정한다. 상대만큼 저음으로 오랫동안 소리를 지를 수 없는 수컷은 무모하게 실전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저음을 낼 수 있다는 얘기는 그만큼 몸집이 육중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물들도 상대를 알고 전략을 취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속성을 모르고 강경책을 취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들은 늘 팔레스타인을 시험해왔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렇게 할 것이다. 어느 순간이든 팔레스타인이 비둘기 전략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놓이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이스라엘이 강경책을 취할 수 있는 배경에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면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중재에 나설 것을 잘 알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강한 미국'정책과 이스라엘 총리 당선이 무관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민주당의 '강한 여당'정책에는 심각한 이론적 결함이 있다. 중재 역할을 해줄 인물이나 단체나 없다는 점이다.

정당정치의 속성상 대통령이 중립을 취하는 것도 아니고 야당과의 사이에 제3의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당이 매 전략을 취했을 때 과연 야당은 무슨 전략을 택해야 하는가.

야당이 비둘기가 되어서는 더 이상 야당이 아니다. 야당은 어쩔 수 없이 매가 될 수밖에 없다. 아라파트가 언제나 매가 될 수밖에 없듯이. 한 나라안의 정치를 매와 비둘기의 관계로 풀어서는 안 된다. 결국 고통을 받는 것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회장 앨런 그린스펀은 그 휘하에 매파와 비둘기파를 두고 그들로 하여금 늘 게임을 벌이도록 해놓고 문제를 분석하고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쿠바 미사일 위기 상황에서 케네디 대통령도 각료들과 함께 매-비둘기 게임을 하며 용단을 내린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붉은큰뿔사슴 수컷들은 자기가 매가 되든 비둘기가 되든 혼자서 결과를 안으면 그만이지만 정치의 매와 비둘기 전략은 그 결과가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국무회의에서 개발과 보전 진영을 매와 비둘기로 놓고 설전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할 수 있지만 정당들이, 그것도 나라를 꾸려야 하는 여당이 무모하게 매를 택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

jcchoi@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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