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 에너지가 우주론 수정 놀라워"한국일보사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동원증권, ㈜팬택, 과학기술부가 후원하는 월례 과학강연 제4회 '사이언스 어드벤처 21' 이 17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언어교육원 대강당에서 열렸다. 고등과학원 김정욱(金正旭ㆍ67) 원장이 '현대우주론과 진공에너지의 신비'를 주제로 강연했다.
물리학, 천문학 등 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우주에 관심 많은 초ㆍ중ㆍ고등학생, 회사원 등 폭넓은 계층이 참가해 400여 석의 청중석을 가득 메웠다.
우주의 탄생과 현재, 미래에 대한 강연과 열띤 토론, 질의응답이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최근에야 밝혀져 일반에 생소한 '진공에너지'에 대해 김 원장은 고무풍선 위의 개미 혹은 그릇 속의 구슬 등 비유를 들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진공에너지에 대한 연구 결과는 아직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 물리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나 어린이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김일두(19ㆍ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2)씨는 노트북을 꺼내 들고 강연 내용을 필기하면서 한마디 한마디 꼼꼼히 담아갔다.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아들과 함께 온 중년 여성도 "진공에너지의 존재가 최근 새롭게 알려졌다는데 조금이라도 알아두면 세상을 폭 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왔다"고 말했다.
천문학자를 꿈꾸는 박동찬(17ㆍ민족사관고 1)군은 "진공에너지의 발견으로 우주론이 수정됐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진정한 진리를 찾기 위한 과학적 탐구는 끝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최신의 과학적 사실을 남들보다 먼저 파악하고 싶은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 찬 대학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진공에너지의 존재에 대한 연구 결과가 2000년에야 발표돼 세상에 알려진 지 얼마되지 않았고, 아직 학교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일두 씨는 "우주공간이 '평평하다'는 게 어떤 개념인지"를 물었고, 김 원장은 "빛이 똑바로 가는 공간"이라고 답했다.
김 원장은 "진공에너지의 존재를 밝히는 실험적 사실"을 들어달라는 김미영(이화여대 물리학과 4)씨에게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를 관측해 얻어 낸 결과이며 어느 거리에 있어도 밝기가 같은 초신성을 관측해도 알 수 있다"라고 답했다.
용산고에 입학할 이승근 군은 "우주공간의 팽창으로 은하계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데 다른 은하계에서 오는 빛의 파장이 달라져 빛의 색깔이 달라지지 않느냐"고 논리정연하게 주장을 펼쳤다.
김 원장은 "이군이 20년대에 태어났더라면 아마도 진공에너지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질문의 깊이에 감탄하며 "그것이 진공에너지 발견의 원리이다"라고 답했다.
또 우주탄생 초기 10분의 1의 43승 초 까지에 대해 알 수 없는 이유를 묻는 등 호기심이 넘치는 이군에게 "이론이 관측보다 앞서 있고, 아직 양자론과 중력이론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입자물리학자들이 에너지를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우주 팽창의 '목적'에 대한 의문도 빠지지 않았다. 정종원(서울 서초구 방배동ㆍ회사원)씨가 "왜 우주가 팽창하는가"를 물었다.
김 원장은 "우주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연'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우주의 진화는 현재 인간이 존재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만들며 진행돼 왔다"면서 "우주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주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말했다.
우주의 탄생과 운명, 그리고 태양계와 지구 등에 대한 천문학적 신비에 접한 참석자들은 "거대한 우주 앞에 티끌처럼 미미한 존재인 인간은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우주의 팽창은 어떤 인격체에 의한 의도가 아닌지" "지구와 같은 문명을 가진 행성이 어딘가에 또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지"등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도 쏟아졌다.
"우주의 65%는 진공에너지"
■강연 요지
진공에너지 때문에 현대우주론이 고쳐졌다. 2년 전 우주론과 현재의 우주론이 다르다. 그러나 진공에너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 없다.
우주에는 두 가지 기적이 있었다. 150억년 전 우주 탄생과 35억년 전의 생명체 발생이다.
20세기 들어 우리는 우주에 관한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우주는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고무풍선 위에 개미 두 마리가 있을 때 풍선을 불면 개미들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처럼, 우주공간이 팽창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은하계와 다른 은하계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그 속도는 거리에 비례하는데, 2억 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계는 초속 1만km로 도망간다.
우주의 나이는 약 150억년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크기도 150억 광년 거리, 즉 10의 28승㎝로 제한된다.
우주에는 1,250억 개의 은하계가 있고, 하나의 은하계에는 평균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그러나 우주공간은 거의 비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주에는 기본 입자인 광자가 약 10의 90승 개, 양성자와 중성자가 약 10의 80승 개 있으나, 우주밀도는 1㎤당 10분의 1의 29승g밖에 안 된다.
우주는 초폭발(빅뱅)에 의해 탄생했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1915년)과 우주 팽창, 배경복사 등의 관측결과가 어우러지면서 빅뱅이론이 정립됐다. 우주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주밀도와 극한밀도의 관계에 따라 가능성은 세 가지다. 우주밀도가 극한밀도보다 적은 열린 우주라면, 우주는 영원히 팽창한다.
우주밀도가 극한밀도보다 큰 닫힌 우주라면, 물질이 너무 많아서 중력 때문에 우주팽창이 멈춰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시 팽창하는 등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우주밀도와 극한밀도와 같아 곡률이 없는 평평한 우주라면, 언젠가 우주팽창이 끝나지만 그 시점은 무한대이다. 한때 우주론 연구자들은 열린 우주를 선호했으나, 현재는 99%의 확률로 평평한 우주라고 생각한다.
우주는 아무것도 없는 무(nothing)에서 시작했다. 양자론에 따르면 모든 것이 요동을 친다. 원자나 전자는 물론이고 진공도 요동을 하는데, 진공이 요동치면서 에너지가 생겨나 우주가 탄생했다. 탄생 후 3분이 지나 원소가, 36만년이 지나서 원자가 생겼다.
빛도 이때 나왔다. 그 후 우주는 1,000배 팽창했는데 빛의 파장도 1,000배가 커져 현재 마이크로파가 돼 우주공간을 채우고 있다. 즉 마이크로파가 빅뱅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화석'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중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1% 이내이고 양자, 중성자 등을 합쳐도 10%를 넘지 못한다. 2년 전까지 나머지 90%는 우리가 모르는 물질로 암흑물질이라고 불렀다.
최근 진공에너지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우주 구성은 다르게 설명된다. 빛을 내지 않는 암흑물질까지 합쳐도 물질은 35% 밖에 안 된다. 알지 못하는 65%는 물질은 아닌데 에너지가 있다.
바로 진공에너지다. 우주의 에너지는 바닥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보다 준위가 더 낮은 에너지 상태가 있다. 그 차이가 진공에너지이다.
우주가 팽창하면서 우주밀도가 작아진다. 진공에너지는 같은 상태로 있지만, 우주밀도가 작아지면서 진공에너지가 물질의 2배 정도가 된 상태가 현재 우주다.
진공에너지의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우주를 지배하게 돼 우주의 팽창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연구자들은 이 발견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917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우주방정식에 진공에너지를 의미하는 우주상수를 도입했다.
그러나 우주방정식을 풀다 보면 우주는 정지하거나 수축하는데, 허블에 의해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진공에너지가 불필요해졌다.
아인슈타인은 '일생 일대의 가장 큰 실수"였다고 했으나, 진공에너지는 부활했다. 진공에너지는 기대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확실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비밀이 언제 풀릴지는 미지수이다. 진공에너지는 신비스럽다.
■김정욱 원장은 누구
김정욱(67) 고등과학원장 만큼 과학을 대중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연구자는 드물다. 1958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고 유학을 떠나 1997년 고등과학원에 부임하기까지 40여년의 미국생활을 하며 '과학도 대중에게 친근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지니고 있다.
인디애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까지 존스홉킨스대 물리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 원장은 중성미자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또 빅뱅 직후 초대칭(우주물질을 구성하는 소립자와 힘을 전달하는 입자들의 대칭)의 존재를 간접 증명함으로써 중력ㆍ전자기력ㆍ강력ㆍ약력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대통일장 이론'에 성큼 다가서는 교두보를 만들었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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