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전통과 익숙한 풍경으로부터 단절됐을 때 사람은 정서적 상처를 입지요.시골 사람들이 겪는 정서의 황폐화는 새마을 운동으로 하루아침에 초가집이 함석지붕으로 강제로 바뀌면서 시작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많은 갈등과 혼란, 불화는 바뀜보다는 바뀜의 속도가 야기한 문제들입니다."
1980년대 중반 월간지 '샘이 깊은 물'의 '이마을 이식구'란 사진 시리즈를 통해 촉촉한 울림을 남겼던 강운구(60)씨가 3년만에 개인전을 갖는다. 28일부터 3월 25일까지 서울 금호미술관(720-5114).
선보이는 사진은 70년대 시골마을이 주요 소재다. '마을 3부작-황골, 용대리, 수분리'라는 전시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제는 이 땅에 없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시골의 초가, 너와집, 건새집 같은 전통가옥과 거기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110점)이다. 정신 없이 뛰는 우리에게 작가가 30년 전 시골 풍경을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을 3부작에 나오는 마을들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화석들이지요." "지켜야 할 것들까지 서둘러, 분별없이 버린 것은 아닐까요." "흔적도 남아있지 않으므로, 정리해서 사진으로라도 남겨둬야 할 이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가장 한국적 질감의 사진을 찍는 작가로 알려진 강운구씨의 흑백 사진은 너무나 고요하다.
역동적이지는 않지만, 따뜻한 서정이 넘쳐나는 포토리얼리즘이다. 전형적 산간 마을인 황골(강원 원주시 치악산 입석사로 가는 들목)의 초가집은 자연경관과 어울려 아늑하다.
용대리(강원 인제군 북면)의 너와집과 그곳 사람의 삶은 '산을 뜯어먹고 사는'가파른 풍경일텐데도 자연의 넉넉한 품 속에 묻혀 있어서인지 따뜻하다. 수분리(전북 장수군 장수읍) 산간마을의 억새풀 줄기로 이엉을 엮어서 지붕을 한 건새집은 이런 곳도 있었나 싶을 만큼 놀라운 풍경이다.
강운구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찍으면 다 '사진' 이었을텐데 아무리 재 보아도 '사진'이 될 것 같지 않아 망설이고 망설이다 겨우 한두번 누른 적이 많다" 면서 "결정적인 순간의 외마디보다는 결정적인 장면의 진한 서사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고 말했다.
또 "작년 여름 다시 그곳을 찾았지만, 용대리의 내설악 너와집 마을은 자취없이 사라졌고 황골과 수분리는 아주 다른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상당수 사진은 이미 잡지나 책을 통해 공개된 것이지만, 한 공간에서 작가주의 작가 1세대의 치열한 포토리얼리즘 사진을 감상하는 것은 모처럼 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줄 듯하다.
28일 오후 5시 개막식은 사진집 '마을 3부작'(열화당 발행)의 출판기념회도 겸한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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