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2년 가까이 국가경제 전체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는 대우자동차가 구조조정을 위한 대규모 정리해고를 계기로 또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물론 1,700 명 이상이 일거에 정들었던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던 안타까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연명을 위해 매일 수십억원 규모의 추가 금융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대우자동차 문제의 해결에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르노의 삼성자동차 인수,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현대자동차의 전략적 제휴 등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자동차산업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대우자동차의 독자적 생존은 불가능하며, 그 잔존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하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는 경우 대우자동차의 청산이라는 극한의 경우를 회피할 수 없게 되는 벼랑에 몰리게 될지도 모른다.
대우자동차의 청산이 한국의 자동차관련산업과 국가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부, 채권단과 노동조합의 힘겨루기는 위험의 본질을 애써 무시하고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벌이는 인질극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무려 2년 가까운 시간동안 결단을 애써 회피한 채 최선의 조건으로 대우자동차를 처리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놓쳐버린 정부와 채권단은 아직도 마치 노동조합 문제가 대우자동차 처리의 가장 큰 걸림돌이고, 이를 해결하면 만족스러운 조건으로 대우자동차를 처리할 수 있을 것처럼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
이제 대우자동차의 인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업체로는 GM이 유일하다. 그러나 GM마저도 이제는 지난해 6월의 공개입찰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 인수조건을 제시하고 있으며, 지난 2년 간 시간의 가치를 철저하게 무시해 온 결과 정부와 채권단이 GM에 대해 발휘할 수 있는 협상력은 이제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비교적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일부 설비만을 아주 낮은 가격으로 분리인수하겠다는 GM의 조건을 들어주게 된다면, 더욱 부실화할 나머지 부분의 해결이 대우자동차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대우자동차의 처리가 국가 경제 전체에 미칠 수 있는 파괴력을 생각하면 이러한 상황에서 정리해고 불가를 주장하며 극한투쟁을 선언한 대우자동차 노조 역시 지나치게 이기적이다.
물론 근로자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는 점에서 대량 정리해고는 경위야 어떻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대우자동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은 필수조건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근로자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현실을 수용하고, 정부와 채권단은 근로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구조조정을 당하는 근로자의 입장에서 미래는 참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IMF 직후에 비슷한 고통을 겪었던 현대자동차의 예는 구조조정이 근로자에게도 전화위복의 좋은 기회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자동차의 경영상황이 개선되어 무급휴가 중인 근로자들을 다시 불렀을 때 거의 반수 정도의 근로자들이 이미 다른 좋은 직장이나 직업을 가지게 되어 현대로 복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구조조정을 무조건적 생존권의 박탈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위한 계기로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채권단은 근로자들이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재교육이나 재취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원하는 경우 우선복직을 보장하는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낭비적 투쟁에 국가의 귀중한 자원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손정훈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