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2월19일 중국의 혁명가이자 정치가 덩샤오핑(鄧小平)이 타계했다. 향년 93세.쓰촨성(四川省) 출신의 덩샤오핑은 14살 때인 1918년에 프랑스로 유학해 20년대 초반에 파리에서 공산주의 운동에 발을 담그면서 혁명의 역정을 시작했다.
그는 모스크바의 중산(中山) 대학에서 공부하고 귀국해, 광시(廣西)에서 공산당의 지하 운동을 이끌며 본격적으로 혁명의 중심부에 뛰어들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대장정(大長征)에 참가하고, 팔로군(八路軍) 정치위원으로서 장강(長江) 도하작전과 난징(南京) 점령을 지도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에 공을 세운 그는 52년 정무원 부총리를 시작으로 당의 요직을 맡으며 현대 중국의 건설을 주도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파란만장의 굴곡으로 점철돼 있었다. 누군가가 그를 가리켜 부도옹(不倒翁)이라고 했거니와, 오뚝이처럼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되풀이한 것이 그의 삶이었다.
30년대 초 마오쩌둥이 공산당 안의 비주류였던 시절에 그를 지지했던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이 절대 권력자가 된 이후에는 늘 그의 반대편에 있었다.
국가주석 류샤오치(劉少奇)와 함께 경제발전을 위해 물질적 보상제도를 채택하고 엘리트를 양성하자는 실용주의 노선을 취했던 그는 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홍위병으로부터 '반모(反毛) 주자파(走資派)의 수괴'라는 비판을 받고 실각했다.
73년 3월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추천으로 복권돼 국무원 부총리가 됐지만, 76년 1월 저우언라이가 죽자 문화대혁명을 주도하던 이른바 4인방에 의해 다시 권력에서 밀려났다.
그 해 9월 마오쩌둥이 죽고 화궈펑(華國鋒)이 4인방을 제거한 뒤인 77년에야 그는 다시 복권됐고, 81년 이후에는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로서 중국의 개혁 개방을 이끌었다. 고종석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