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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브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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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브루노

입력
2001.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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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 2월17일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가 로마에서 화형 당했다.향년 52세. 그는 죽기 전 7년여를 감옥에 갇혀 살았다. 브루노는 베네치아에 머물던 1592년 종교 재판소의 수사관들에게 붙들려 로마로 끌려간 뒤 이단 신문을 받았는데, 교회나 국가는 시민들에게 특정한 생각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대가로 결국 장작불 위에서 죽었다.

나폴리 교외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브루노는 18살에 도미니코 교단에 들어가 사제(司祭)가 되었다. 그 당시 도미니코 교단은 '참 신앙의 경찰견'이라고 불릴 만큼 종교 탄압에 앞장서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철학자들의 '나쁜'영향을 받은 브루노는 곧 교단에서 추방됐고, 그 이후의 삶을 글자 그대로의 '편력(遍歷)'으로 채웠다.

그는 제네바로, 리옹으로, 툴루즈로, 파리로, 옥스퍼드로, 마르부르크로, 비텐베르크로, 프라하로, 취리히로, 베네치아로 나돌았다.

그가 여행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가 어떤 도시에 가든 늘 '자유 사상가'로서의 그의 평판이 그보다 먼저 그 곳에 도착해, 경찰의 감시와 추방령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편력의 삶을 대학 강의로 꾸려나갔고, 범신론에서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에 이르는 그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대학 당국은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을 정녕 기쁘게 하는 교수를 좋아하지 않는 법이어서, 그는 끊임 없이 보따리를 쌀 수밖에 없었다.

브루노의 철학은 자연에 대한 동경으로 그득하다. 그가 생각한 신성(神性)은 온 우주를 꿰?는 생명 곧 우주령이었다. 그가 화형 당한 곳은 로마의 캄포 데이 피오리(꽃의 들판)라는 빈터다. 그의 재는 꽃잎처럼 바람에 실려가 우주령에 닿았을 것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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