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연평리. 마을 입구에서부터 빼곡히 들어차있던 비닐하우스 단지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모두가 납작하게 내려앉아 눈 속에 파묻혀 버린 것. 15일 단 한루의 폭설로 이 마을 250여 농가가 가꿔온 비닐하우스 2,000여동 가운데 무려 60%에 달하는 1,400여동이 주저앉았다.비닐하우스 9동 중 단 한 동만을 건진 이원휘(李元徽ㆍ58)씨는 "지난해 가을 파종한 배추와 참나물을 17일 서울 가락동 시장에 출하하려고 전화까지 해 놓았는데 이 지경이 됐다"며 "30년 농부 생활에 이렇게 허망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넋을 놓았다.
30동 중에 5동만 남았다는 배동수(裵東洙ㆍ57)씨는 "4개월간 자식처럼 애지중지 기른 열무와 쑥갓이 출하를 며칠 앞두고 하루아침에 떠나 버렸다"며 "7,000만원이나 되는 농협 빚을 이제 어떻게 갚을지"라고 시름에 겨웠다. 지난 가을 처음으로 지은 9동을 몽땅 잃어버린 박효순(朴孝順ㆍ54ㆍ여)씨도 "생명줄이었던 내 실파를 하나도 못건지게 됐으니 어쩌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피해가 너무 엄청나 당장은 복구도 엄두 낼 수 없는 상황이다. 박영래(朴永來ㆍ38)씨는 "덮여 있는 눈을 치우면 찬 공기에 노출된 작물이 얼어 눈을 치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둘 수도 없다"며 "어떻든 무너져 내린 비닐하우스 안의 작물은 모두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애꿎은 담배만 빨아댔다.
백경렬(白慶烈ㆍ51)씨도 "작물 수확은 커녕, 무너진 하우스를 무슨 돈으로 새로 지을 지가 큰 걱정"이라며 "그저 눈 녹을 때만 기다릴 수 밖에는 없다"고 허탈해 했다.
이곳 농부들의 대표격인 최종삼(崔鍾三ㆍ44) 진천읍 시설채소 작목회장은 "땅을 빌리고 빚을 내 농사를 지어온 우리 마을 농민들이 삶의 희망을 한 순간에 앗겨버리고 허탈감에 빠져 있다"며 "시설 보수를 위한 저리 농자금 융자나 보상 등을 통해서라도 농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남양주=정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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