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여명의 국내 경제학자들이 15일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 모여 '2001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추진위원장 김세원 서울대 교수)'를 개최했다.학파ㆍ학회별로 독립적 연구를 해오던 경제학자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여 금융ㆍ재정ㆍ산업조직ㆍ노동 등 경제학 전 분야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이기는 사상 처음이다.
160편의 논문이 발표된 이 대회에서 참석자들은 외환위기이후 경제개혁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집중 토론했다.
'2001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 참가한 국내 경제학자들은 1997말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경제개혁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기업부문에는 추가 부실의 지뢰가 여전히 남아있고 금융부문은 수익성 개선에 실패해 위기의 근원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성과 - 경제 시스템의 재건
참석자들은 3년여에 걸친 정부의 4대부문 구조개혁에 대해 우선 '무너진 시스템(경제 골간)의 재건(再建)'이라는 차원에서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서울대 이천표 교수는 "부실대출에 찌든 금융권이 정리되고, 대마불사의 신화도 무너졌다. 재벌의 소유ㆍ지배구조 개혁을 위한 제도적 기초도 마련됐고 유연한 노동시장, 작고 효율적인 공공부문을 위한 범 국가적 노력도 있었다"고 밝혔다.
◆문제점1 - 변질된 금융개혁
그러나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금융개혁의 본질이 '부실기업 퇴출'에서 '원활한 자금순환'으로 변질되면서 결과적으로 신용경색을 초래했고, 나아가 위기재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대 이창용 교수는 "환란 직후 '선 은행, 후 투신' 방식의 구조조정은 연쇄도산을 줄인 공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투신사를 지배하고 있던 '한계 대기업'의 생존을 연장시켰다"며 "이는 급한 상황을 뒤로 미루는 정책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실 대기업들은 환란이후 회사채를 집중 발행했다"며 "이 결과 지난 3년간 발행된 회사채의 22%가 부실화했고, 이중 78%는 대우채권"이라고 말했다. 금융기관이 기업부실을 원천적으로 해소하지 못해, 신용경색이 심화하고 또다른 위기가 예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점2 - 여전한 기업부실
우리경제를 옥죄고 있는 기업 부실은 정부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제도와 대우ㆍ현대그룹 처리의 지연에서 비롯됐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인하대 장세진 교수는 "채권단은 부실채권의 누적을 피하기 위해 워크아웃기업의 청산을 회피했고, 특히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은 시장의 평가가 아니라 정부의 평가로 기업의 생사를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이천표 교수는 "대우와 현대의 경우 해결의 좋은 방안이 없다고 해서 본질을 외면하다 결국 우리 경제의 무거운 멍에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결과 금융기관은 위험관리를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이를 통해 살아난 기업은 건전한 기업으로의 자금흐름까지 막아 금융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문제점3 - 정부개입과 비(非)시장원리
참석자들이 정부의 지나친 시장개입과 시장원리에 위배한 정책에 대해서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은행합병 및 공적자금 투입과 관련, 장세진 교수는 "우량은행간 합병을 해도 시너지 효과가 없고, 부실은행간 합병은 더 큰 부실을 초래할 수 있는데도 정부는 '대형화 콤플렉스'와 '가시적 성과'에 얽매여 이를 강제했다"며 "부실은행에 대해서도 청산보다는 공적자금 투입으로 국유화하면서 시장원리를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김병주 교수 지적
'어렵다. 재미없다.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 쓸모 없다.'
한국경제학회 회장인 김병주서강대 교수가 15일 서울대에서 열린 경제학공동학술대회에서 '한국 경제학 교육의 개선방향'을 발표, 경제학 교육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김 교수는 "현실의 시장과 제도에 대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연구하는 학문이 경제학"이라며 " 현실관련성을 무시하면 '내시들의 학문'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경제학 연구 역사가 짧고 깊은 단절이 반복된 상황이 특수한 연구환경을 만들었다"며 "한국은 경제학의 특이한 임상병리학을 위해 더없이 좋은 연구병동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의 발표 중에서 눈길을 끈 것은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주장이 경제학 논리를 압도하는 상황이 오히려 경제학자들의 연구욕을 자극한다'는 부분. 그는 "시장경제원리의 주장이 암묵적으로 권위주의 권력의 점진적 폐위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은밀한 흥분을 맛볼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안국신(경제학) 교수도 경제원론 강의법에 대해 연구자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안 교수는 "경제원론 교육은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방법밖에 없다"며 "경제시사토픽, 정보통신혁명과 네트워크 관련 교육 확대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특히 경제학 관련 강의자들이 ▦진도 위주의 강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 ▦특강 및 견학교육의 부재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또 "좀더 이해하기 쉽고 간편한 교재를 만들고 고등학교 교과 내용과 대학 수능시험을 개선하지 않는 한 경제원론이 사양과목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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