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자진 월북했다고 강변하더니, 정치범수용소도 모자라 결국 목숨까지 앗아갔단 말입니까."1987년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유럽여행길에서 납북됐던 이재환(당시 미국MIT대 박사과정 재학)씨. 북한 적십자회가 15일 아들 재환씨의 사망사실을 우리 정부에 통보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영욱(70ㆍ변호사ㆍ서울 강남구 청담동)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2년전 아들이 정치범수용소에 갖혀 있다는 정부발표에 억장이 무너졌으면서도, 그래도 살아만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버텼는데.."
재환씨 납북 이후 14년간 이씨 집에서는 웃음이 사라졌다. 이산가족의 사연이 TV에라도 나오는 날이면 온 가족이 수면제에 기대야 했다. "나 때문에 체제선전목적으로 납북된 것"이라는 자책감에 이씨는 사건 직후 국회의원(민정당 전국구)도 그만두었다.
99년 2월 재환씨가 탈북 실패 후 정치범수용소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에는 "남쪽이 안되면, 제3국에라도 보내게 도와달라"는 호소문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HR),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등에 보내며 송환을 위해 안간힘을 써 왔다.
지난해 2월부터는 이씨가 납북자가족모임에 고문으로 참여, 동진호선원가족 등 동병상련의 납북자 가족들과 함께 뛰어다녔다.
이날 마지막 희망마저 놓쳐버린 이씨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눈물을 삼켰다. "손자를 유난히 아끼던 어머니가 3년전 눈을 감으셨는데, 이제 재환이가 저 세상에서나마 할머니 곁에서 행복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안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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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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