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1949년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무역 사기 사건으로 무역수지를 재조정해야 할 정도의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 정부는 남부 11개 성 및 자치정부가 연루된 천문학적 규모의 조세포탈 혐의를 수사 중이며 "이 수사는 중국의 무역수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15일 보도했다.이 신문에 따르면 주룽지(周鎔基) 총리의 지시로 광둥(廣東)성 등에서 탈세 사건을 수사해온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이미 수백명의 공무원과 수출업자들을 체포했다. 현재 정확한 탈세 규모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근 충격을 줬던 푸젠(福建)성 위안화(遠華) 그룹의 밀수사건(530억 위안ㆍ60억 달러)보다 훨씬 클 것으로 중국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 경우 수년간 엄청난 흑자를 기록해온 중국의 무역수지 자체가 대폭 수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지 기업들은 세관ㆍ무역업자 등과 짜고 수출을 하지 않았으면서 허위로 수출신고를 하는 수법 등으로 거액의 수출부가세를 환급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수출 신고시 적시한 수출상품이 아니라 모래 등을 컨테이너에 선적한 뒤 가까운 해변가에 버리는 수법으로 수출을 위장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허위 수출액이 최소한 60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지난해 중국의 총수출액 2,492억달러도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중국의 수출 증가폭이 크게 둔화한 점도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14일 발표된 중국의 지난 1월 수출액은 169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8% 증가에 그쳤다. 이는 1999년 6월 이후 최악의 증가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경제의 둔화 등 외부 요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탈세 수사로 '허위 수출'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허위 수출의 본거지는 위안화 밀수사건의 진원지인 푸젠성 샤먼(廈門)과 함께 '양대 밀수도시'로 알려진 광동성의 경제특구 산터우(汕頭)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과거 두 차례 조사단을 이곳에 파견했다가 세관ㆍ공안 당국과 기업의 유착관계와 철저한 로비 등으로 모두 실패했으나 이번엔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중국 정부가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를 환율 조정 대신 강력한 수출 부양책으로 돌파하려 한 것과도 연관이 있다. 기업들은 취약한 수출 환경 속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기 보다는 허위 수출을 통한 부가세 환급의 유혹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중국 정부는 일반 기업의 경우 최대 17%에 이르는 부가세를 부과하지만 상품을 수출할 경우 평균 14.75%를 되돌려 줬다.
중국 정부는 수사를 전면적으로는 펼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두고 세계적 수준의 무역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탈세 등 부패행위를 척결해야 하지만, 파헤칠수록 피해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져 성장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이미 수사의 여파로 주가가 떨어졌고, 탈세를 막기 위해 엄격한 관세를 집행하면서 건전한 수출업자들 마저 위축되기 시작했다. 탈세의 뿌리가 권력의 핵심에 이어져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중국 정부가 '정치 안정' 우선이라는 대전제를 무너뜨리면서까지 부패와의 전쟁을 추진하기가 어렵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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