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설을 쓰는 유일한 이유, 그것은 세계가 추악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현실과 싸우기보다,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세계를 변화시킨다."'프랑스 문학의 내일' 혹은 '프랑스적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로 불리는 소설가 크리스토프 바타이유(Christophe Batailleㆍ30).
그를 파리 시내 생제르망 데 프레 근처에 있는 저명한 그라세(Grasset) 출판사에서 만났다. 그는 현재 이 출판사의 문학 담담 편집장이다.
1993년 스물두 살 때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발표하며 프랑스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바타이유의 작품들은 4년 전쯤부터 국내에도 번역되면서 순문학 쪽에 열광적인 마니아를 형성시켰다.
프랑스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명문 HEC(고등경영학교)를 졸업하고는 엉뚱하게 문학의 세계로 뛰어든 그는 그간 '압생트'(1994) '시간의 지배자'(1997) '지옥 만세'(1999) 등 4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작품마다 심오한 존재론적 주제를 영감에 젖은듯한 냉정하고 건조한 문체로 신비롭게 표출하는 그는, 고전적 엄격함을 지니면서도 기존의 문학을 낯설어 보이게 하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작가로 평가된다.
- 작가로서, 또 편집자로서 보는 프랑스 소설의 최근 흐름을 알려달라.
"솔직히 실망스럽다. 30~50년 전 그라세 혹은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일을 했다면 포크너, 클로델, 카뮈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을텐데.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다. 요즘 소설의 경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작가들 스스로 만족하는, 자기 경험을 쓰는 소설인데 나는 절대로 그걸 쓰지 않는다.
둘째 독자에게 단지 자극과 충격을 주려 하는 소설이다. 실업이나 마약, 성 문제를 다룬 긴 장편들인데 아마 영화에서 영향받는 것 같다. 셋째 단순한 언어로 낭만적이고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상업적 소설들이다."
- 한국과 상황이 별반 다른 것 같지 않다.
"문제는 글 자체의 아름다움을 찾는 작가들이 드물다는 사실이다. 문장의 아름다움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귀머거리인 셈이다."
- 그렇다면 문학의 새로운 출구는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편집자의 자리에 있으면 일년에 한 권씩 소설을 써 가지고 오는 작가들을 많이 본다. 그들은 세계를 발견하려 사고하는 일은 하지 않고 글 쓰는 일만 하는 모양이다.
물론 발자크나 빅토르 위고도 많이 썼지만 그들은 특별한 케이스다. 제임스 조이스 같은 작가들이 독자의 숫자를 생각하며 소설을 쓰지는 않았다.
성공만 바라서는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없다. 작가들은 가난하게 사는 것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 당신의 최근작인 '지옥 만세'는 현재 한국어 번역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내용인가.
"프랑스 동부와 유럽 전역을 배경으로 강철공장에서 일하는 15세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빛과 어둠, 부드러움과 광기의 대비되는 세계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썼다.
'지옥 만세'는 프랑스혁명 당시 민중들이 외쳤던 구호이다. 나는 이 소설로 세계의 추악성을 보여주려 했다."
- 이전까지 당신의 작품들은 모두가 현대가 아닌 바로크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내가 택하는 시대는 역사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역사 밖에 있다. 과거를 택하는 것은 거기서 깊고 비극적인 울림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쓴 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라짐과 버림받음, 혹은 침묵과 죽음, 고통과 이별 같은 주제들이다. 지금은 작가들도 상업적 자본주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소설도 단순하게 쓰려 한다.
하지만 작가는 창조적인 언어의 힘, 문장의 힘을 믿고 거기 도전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한 작가로서 내가 바라는 것은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독자를 울리는 깊은 감동을 주는 소설'을 쓰는 것이다."
- 영상문화나 인터넷의 영향으로 기존에 문학이 가지던 위상은 많이 변화했다.
"사실 나도 일종의 '문학적 폭발력'을 영화 속에서 느낄 때가 많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나 최근의 아시아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그렇다.
하지만 문학은 그것과는 다른, 변함없는 인간조건의 차원을 건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매일 아침 그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하곤 한다. 인터넷은 강하고 민주적이다. 하지만 '고도의 문화'에는 위험한 도구이다."
바타이유의 글을 읽으면 그가 자신의 문장을 완벽하게 장악하면서, 거기에 생의 신비에 대한 끓어오르는 의문과 정열을 표출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국내의 일부 평자들은 그런 바타이유를 '천재' 작가라고 명명하기도 했지만 그와의 대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에 못지 않게 성실하고 노력하는 젊은 소설가라는 점이었다.
"한국문학 체계적인 대외홍보 부족
●佛최대 갈리마르 출판사 장마테른 편집장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려면 아무리 작은 정보라도 좀 보내달라. 정보가 너무 없다." 프랑스 최대의 문학출판사인 갈리마르의 장 마테른(35) 외국문학 담당 편집장은 한국문학이 세계화를 바라면서도 도대체 정보를 주려는 노력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문학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한 작가나 책을 소개하고는 즉각적 결실을 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문학에 관한 한 프랑스에서 첫손에 꼽는 '통'이다. 이문열씨 등의 작품을 불역한 악트쉬드 출판사에서 8년간 한국 작품의 저작권을 유럽 전역에 판매하는 일 등을 했다.
2년 전 갈리마르로 옮겼다. 그는 "갈리마르에는 슬로베니아 같은 곳에서도 문학재단들이 꾸준히 원고나 정보를 보내온다.
한국은 그런 지속적ㆍ체계적 노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1907년 창립된 갈리마르는 3대째 가업으로 출판사를 계속하고 있다. 연간 350여 종의 프랑스문학을 출간하고 외국문학은 30여 종을 낸다.
"크리스토프 바타이유를 만나고 왔다"고 했더니 장 마테른은 "이웃 아파트에 사는 내 친구"라며 "훌륭한 작가"라고 덧붙였다.
그는 2,3년 전부터 프랑스에서는 자전소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소개하고, 앞으로는 다문화적ㆍ혼성문화적 문학이 뚜렷한 움직임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떤 문학이든 중요한 것은 작품의 질, 구체적으로는 문체의 질"이라고 말한 그는 "한국에서의 통일과 관련한 움직임이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요즘도 분단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가?"등 한국통다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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