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부터 10일까지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부시 행정부 아래서의 한미관계 전망과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진단을 들어보았다.이 장관은 14일 세종로 정부중앙 청사내 집무실에서 한국일보 이병규 정치부장과 가진 인터뷰에서 남북문제와 한반도 상황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예상보다 빨라졌다. 한미 정상회담 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답방할 가능성이 있는가.
"한미 정상회담이 얼마 안 남았다. 우리는 투명한 사회다. 김 위원장의 답방도 정상적으로 투명하게 이뤄질 것이며 그러자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미 외무장관 회담이 열린 지 얼마 안돼 임동원 국정원장이 미국을 방문, 파월 미국무장관 등을 만났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정보기관의 일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담당 분야가 달라 얘기할 대상은 다르지만 정보기관의 장이나 외교부 장관이나 (미국 방문의) 목적은 같다."
-워싱턴에서 있었던 한미 외무장관회담을 평가한다면.
"부시 행정부 취임 후 파월 장관 등 미 외교라인에 우리 정부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공식 기회였다.
한반도 상황, 남북 정상회담 후 북한의 변화에 대한 평가 및 한미 관계 전반을 13개 항목으로 나눠 상세히 설명했다. 우리의 대북정책을 부시 행정부에 설명했고 미측도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파월 장관은 북미 관계가 남북 관계보다 앞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진전의 속도차로 인한 마찰 요인은 없는가.
"남북 관계는 북미, 북일 관계와 병행 발전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기본입장이다. 파월 장관의 얘기는 한미 관계가 북미 관계보다 중요하다는 입장을 확인한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전제아래 '상호주의'와 '검증'을 얘기했다.이는 클린턴 행정부 때와는 뉘앙스 차이가 있는 것 아닌가.
"미국도 북한의 변화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미사일과 재래식 무기 등 군사적 측면에서 북한이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남북 관계 진전이 한반도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고 있는 측면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이 공조체제를 유지하지만 우리의 대북정책과 미국의 대북정책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의 성과를 토대로 대북 정책을 펴 나가겠지만 미사일 문제에 대해 북한측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지켜보면서 북미 관계를 진전시킨다는 입장이다.
-대북 상호주의 적용 문제는 어떻게 얘기됐나.
"우리는 대북 상호주의를 기계적이 아니라 신축적이고 융통성 있게 그리고 전략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을 설명했다.
미국도 북한의 현실에 비춰 정확한 상호주의를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이해했다. 파월 장관은 '비대칭 상호주의'란 말을 썼는데 이는 우리의 전략적 상호주의와 같은 의미이다.
상호주의에 대해 한미간에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오해다. 철저한 검증 요구도 당연한 것이다. 검증 없이 핵과 미사일 의혹 해소 문제를 논할 수 없다. 제네바 핵합의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목이 검증이다."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 때의 대북 유화책에 대해서도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는데.
"북한과의 모든 문제를 다 푼 다음에 관계개선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럽 국가들도 북한과 먼저 관계개선을 한 뒤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미사일 문제 등을 해결하고 나서야 관계개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파월 장관은 미사일 문제 해결은 관계 정상화로 가는 티켓(ticket to stadium) 이라고 표현했다."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자 마자 중동문제가 복잡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중동 문제가 복잡하게 꼬임으로써 한반도 문제가 미국의 대외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가능성은 없는가.
"전투행위가 재개되고 있는 중동과 달리 한반도에서는 무력 충돌이 진행되는 상황은 아니다.
미국이 외무장관 회담이나 정상회담을 갖는 순서를 보면 미국의 동맹국 우선정책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 등 인접국, 영국 한국 일본 등 동맹국, 중국 러시아 등 지역 강국 순으로 정상회담을 한다.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 영국에 이어 한국과 정상회담을 갖는 것을 보면 한국을 중시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부시 행정부가 국가미사일방어(NMD) 정책 추구로 중국 및 러시아와 대립함으로써 한반도 안정이 불안해질 가능성은.
"NMD 계획은 미국의 세계전략과 연결돼 있고 주요 국가들간에 입장이 첨예하게 다르다. NMD 등과 관련 미국으로부터 어떤 공식 요청을 받지 않았다. 우리가 먼저 우리 입장을 밝힐 계제가 아니다."
-해외주둔 미군에 대한 개편 문제가 나오는데 주한 미군에도 변화가 예상되는가.
"한반도의 전쟁 억지와 동북아 안정자로서의 주한 미군의 역할에 대해 미국측에 분명히 얘기했다. 미국측도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정상 회담에서 주한 미군의 위상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준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태국 아시안 지역안보포럼(ARF) 때 남북 외무장관 회담이 처음 열렸는데 올해 국제무대에서의 남북간 협력방안은.
"7월 말 베트남 ARF 외무장관 회담과 유엔 총회에서 남북 외무장관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ARF 때 남북과 미ㆍ일ㆍ중ㆍ러 등 6자 외무장관 회담을 추진할 계획이다.
북한이 ARF에 가입했기 때문에 실현 가능한 일이다."
-10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열리는 아ㆍ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북한을 초청할 수 있는가. 회의기간 중 남북한과 미국의 3자 정상회담, 남북한과 미ㆍ중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할 계획은.
"APEC은 2007년까지 신규 회원국 가입을 막고 있다. 게스트(초청대상국) 자격으로 회의에 참가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회원국 전체의 컨센서스를 이룰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북한이 APEC 주관 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북한이 낀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은 현실성이 크지 않다."
-부시 대통령은 언제 방한하는가
"APEC 회의 참석을 위해 중국에 가는 길에 우리나라를 방문한다는 입장이다. 그 이전이라도 방한해 달라고 요청했다."
-클린턴 행정부 때 입안한 페리 보고서가 부시 행정부에서 변형될 가능성은 없는가.
"페리 보고서는 초당적 성격의 대북정책 보고서이지 클린턴 행정부의 일방적 보고서는 아니다. 부시 행정부는 페리 보고서의 세부 사항을 조절하겠지만 기본틀을 크게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페리 보고서에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안(disincentive)이 들어 있다. 현재로선 북한이 (제네바 핵합의를) 잘 이행하고 있는데 이행하지 않을 경우를 클로즈업할 필요는 없다.
-방미 중 의회지도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과거엔 공화당이 의회에서 강한 목소리를 냈는데 앞으로 민주당이 그럴 것이다.
공화당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한미 동맹 관계의 중요성과 긴밀한 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3월 방미 때 의회 지도자들과의 간담회를 갖는 문제를 협의했는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부시 행정부 출범으로 한미간 통상 마찰이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데.
" 한미간 통상문제는 이미 제도적으로 확립 돼 있다. 협상하다 잘 안되면 법적 절차에 따르면 된다. 미국이 동맹국인데 이럴 수 있는냐 하는 단계는 지났다."
-부시 행정부 출범에 즈음해 한미관계와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 변경가능성을 놓고 설왕설래가 많았는데.
"미국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다. 하지만 한반도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고 미국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입김에 우리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반도의 주인이 누군가하는 착각을 들게 할 때가 더러 있다. 여러 상황을 참고하는 것은 옳지만 남북간의 현실을 도외시한 대북정책이 있을 수 없다는 데서 얘기를 출발해야 한다.
대북 정책의 주체는 우리인데도 가끔 주인 의식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정리=김승일 기자
ksi8101@hk.co.kr
사진=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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