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상인들은 '봉'이다. 건물주가 지나친 수준의 보증금ㆍ월세 인상을 요구해도 속수무책으로 응할 수 밖에 없고,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당해도 그대로 쫓겨나는 길 외에는 별 도리가 없다. 아무런 법적 보호장치가 없는 탓이다.더구나 최근 경기 침체로 건물주들의 부도가 잇따르면서, 숱한 임차상인들이 시설투자금에다 임대보증금까지 몽땅 날린 채 대책없이 거리에 내몰리고 있다.
▦ 살얼음판 위의 임차상인
서울 중구 충무로 모 빌딩내 호프집 주인 강모(47)씨는 계약이 끝나는 보름 앞만 생각하면 억울하고 막막하다. "건물주가 감당할 수 없는 월세인상을 요구하면서 '싫으면 나가라'고 최후통첩을 해왔어요. 평생 모은 2억여원을 모두 날리게 돼 시설비만이라도 돌려달라고 통사정했지만 막무가내입니다."
서울 강남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K씨도 같은 경우. "28일까지 건물주가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 1년전 들인 시설비 7,500만원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습니다. 변호사도 '사정하는 일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최근 서울 명동 코스모스플라자 임차상인 1,000여명이 경매를 통해 건물주가 바뀌면서 보증금 607억원을 날렸고, 서울 여의도 거평마트 임차상인 60여명(보증금 100억여원)과 전국 8곳의 한양프라자 상인 250명(155억여원)도 보증금을 날렸다. 이달 초 한국부동산신탁 부도 피해자인 경기 분당 테마폴리스 계약자 1,700명 가운데 가정파탄으로 인한 이혼자가 벌써 10여명이 나왔다.
14일 부동산경매정보회사 (주)태인에 따르면 경매에 넘어간 서울의 상가건물이 1월에만 무려 1,072건.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 연대기구인 '상가임대차보호 공동운동본부'에 접수된 관련 피해건수도 1만 건을 훌쩍 넘었다.
▦ 팔짱 낀 정부와 정치권
'상가임대차보호 공동운동본부'는 지난해 9월 '상가임대차보호법'제정을 추진했지만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고, 앞서 15대 국회 때도 천정배(민주당) 의원 등이 입법발의를 했지만 법사위 상정도 못했다.
정부 역시 팔짱만 끼고있기는 마찬가지. "임차상인들에게도 전세등기 등 채권자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있다"(건설교통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방지가 우선인 감독규정을 임차인보호 목적으로 바꾸기는 곤란하다"(금융감독원)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 사업자등록원부를 통한 임차상인 대항력부여 ▦ 보증금ㆍ월세 인상 및 월세전환시 이율상한제도입 ▦ 임차인 계약갱신청구권부여를 통한 장기계약 유도 등을 골자로 한 상가임대차보호법안을 마련, 재차 의원입법 발의 추진에 나섰다.
이날 국회 김문수(한나라당) 의원실에서 여야의원 10여명을 상대로 법안 설명회를 가진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김남근(38) 변호사는 "무수한 영세상인들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과도한 임대료 인상''일방적인 계약해지' '보증금 피해' 걱정으로 살엄음판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호소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