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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헛방 치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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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헛방 치는 정치

입력
2001.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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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지하철로 출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지난 달 지하철에서 만난 승객을 이 달에도 만날 확률은? 민주당의 한 부대변인은 어떤 수학을 동원했는지 이를 10억분의 1로 계산해 냈다.그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지하철 민심탐방 연출 의혹을 제기한 것은 복권 당첨보다 훨씬 희박한 확률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느냐는 상식적 의문에서 출발했다.

거기에 이 총재를 수행한 한 여성 의원이 여고 동창생과 마주치는 일까지 겹쳤으니 적어도 수학적으로는 그 부대변인을 비난할 일이 못 된다.

실제로 연출을 했는지의 여부와는 상관 없이 이 총재의 민심탐방 연출 의혹 논란 기사를 읽은 독자들이 이 총재 측에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는 것도 우연이라고 믿기 어려운 일이 겹쳐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발생한 사건에 대해 그 발생 확률을 따지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천체 물리학자들에 따르면 150억년 일어난 전 대폭발 순간에서 현재 모습의 우주가 생성될 확률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희박한 확률이라고 한다.

그 긴 우주의 역사와 지구의 생성, 그리고 지구의 표면에서 생명의 발생 및 진화를 거쳐 오늘의 '나'가 존재할 확률은? 이 역시 계산 불가능한 확률이지만 나는 오늘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현실 정치를 확률로 접근하면 모든 게 의혹 투성이다. 현재 국민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는 수많은 정치 쟁점들 가운데는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지 않았을 리 없다" 등등의 어거지 확률을 근거로 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민주당의 부대변인은 지하철 민심탐방 연출 의혹을 제기하기에 앞서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들이나 아니면 한나라당 측에 먼저 경위를 알아 보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연출 의혹 공방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사람들이 그 시각 지하철에서 이 총재 일행을 만나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총재 측에서 보면 연출의 실익도 없었다는 사정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본다든지, 상대방의 진의를 알아본다는지 하는 노력은 우리 정치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의도적으로 진의를 왜곡하고 말꼬리를 잡아 모든 사안을 정쟁으로 몰고가는 데 익숙할 뿐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얼마전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언급한 바로 그날 밤부터 공영방송들이 일부 신문사를 맹비난했다"며 대통령의 언론개혁 언급과 공영방송의 일부신문사 비판을 연결시킨 것도 그 한 예다.

이 총재가 거론한 공영방송은 대통령의 연두회견 훨씬 전부터 자신들과 긴장관계에 있는 한 신문사를 비판하는 보도를 준비했었다.

민주당이 안기부 선거자금 사건과 관련해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의 선대위 의장이었던 이회창 총재가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당시 얼굴마담 격이었던 선대위 의장의 위상을 외면하고 개연성만 갖고 펼치는 정치 공세다.

여야는 사안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해 대응하기 보다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그 사안을 왜곡시켜 놓고 상대방을 공격한다.

결국 실체가 아닌 헛것을 때린 것인데 그 피해는 국민의 헷갈림으로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실체를 왜곡하는 정치권의 공방은 국민을 기만하는 사기극이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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