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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칼럼] '레임 덕' 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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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칼럼] '레임 덕' 이로소이다

입력
2001.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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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사전에 레임 덕(권력 누수)이란 없다"작년 8월초,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 직원들 월례 조회에서 있은 이 말을 박준영 대변인은 이렇게 부연했다. "원칙에 따른 철저히 실천해 나가는 대통령의 통치철학이 계속되는 한, 레임 덕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장담'이 있은지 6개월, 국민의 정부 집권 3년(2월25일)을 앞둔 요즈음, 시정(市井) 술자리의 조크는 다르다. 이런 줄거리다.

"5공 전두환 대통령은 퇴임 직후에 레임 덕이 됐다. 6공 노태우 대통령은 퇴임 직전에 레임 덕이 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 1년 전에 레임 덕이 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퇴임 2년 전에 이미 레임 덕이 된 것 아닌가."

청와대가 들으면 펄쩍 뛸 내용이지만, 요즘 나라 안 사정을 보아서는 그런 취중농담이 나돌 토양은 충분한 것 같다.

정치의 되어감 새나, 경제의 돌아감 새가 모두 그렇다.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정부의 정책행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일찍 찾아 온 레임 덕은 오로지 정부의 실정(失政) 탓으로 돌릴 수가 있을까.

작년 초에 나온 어떤 정치학 교과서(咸成得: '大統領學')는 김대중 정부가 이른 레임 덕을 맞게 될 여건은 두루 갖추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본디가 5년 단임인데다가, 내각제를 담보로 한 소수연립 정부인 점,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의 불일치로 인한 정치적 통제력의 약화 가능성, 불투명한 경제상황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의 레임 덕 현상은 이르면 2000년 중반부터 발생할 수가 있다"고 그 교과서의 저자는 예언하고 있다.

우연찮게도, 한광옥 실장의, 그 때는 느닷 없는 듯했던 '장담'과 시기가 맞는다. 오늘의 상황에 비추어서는 그 '예언'과 '장담' 어느 쪽이 적실(適實)하다고 해야 할까.

어느 면에서, 레임 덕은 임기제(任期制) 대통령에게 국정의 전권을 맡기는 민주주의의 피치 못할 비용일 수가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 비용이 엄청날 수가 있음을 우리는 김영삼 정부 말기에 경험했다.

문제는, 레임 덕의 비용은 어쩔 수가 없으되, 그 비용을 가능한 한 최소화 하도록 관리하는 일이다.

이와 같은 과제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바로 앞서의 취중농담에 등장한 전(前) 대통령들이다.

그 중 전두환 대통령은 4.13 호헌선언이란 초강수(超强數)로 6월항쟁을 불렀다. 노태우 대통령은 탈당과 중립내각이라는 변칙수를 두었다가 자당(自黨) 후보에게 정권을 탈취 당하는 꼴을 당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 1년전 신넌 회견에서, 통치권 강화를 호언장담한 직후 그 위세가 급전직하(急轉直下)했다.

그 때까지 쌓인 한보사건, 김현철 비리, 노동법 날치기 등의 적폐를 아랑곳 않은 오기가 오히려 레임 덕을 불러 들인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이 연초 회견에서 밝힌 강한 정부ㆍ강한 여당론을 들으면서도 전철(前轍)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라기는 강한 정부든, 강한 여당이든, 레임 덕의 비용을 관리하는 슬기다. 이경우 생각할 것은 레임 덕은 피치 못할 비용일 뿐 아니라, 효용 또한 크다는 점이다.

레임 덕 대통령은 다음 선거결과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당장의 정치적 이해를 뛰어 넘어 국가적 과제를 수행할 수가 있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큰 정치'를 할 수가 있다는 얘기다. 이 것이 바로 역사에 남을 대통령 아니겠는가.

그런 뜻에서는, '레임 덕은 없다'고 소리치기 보다는 '레임 덕이로소이다'하는 것이 더 현명한 길일 수가 있다.

그 길은 정치9단(政治9段)의 정치졸업으로 열린다. 어떤 원로가 언급한 '노벨상 받은 분'의 함축도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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