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저녁 5시 30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김각중(金珏中) 회장으로부터 긴급한 연락을 받았다.차기회장 추대를 위해 전경련 회장단과 고문단이 회의를 열기로 예정했던 시간 보다 1시간 전의 일이었다. 내용은 '불참하겠다'는 것.
참석자들은 아연 긴장했다. 차기회장으로 추대된 김회장의 '불참'은 곧 차기 회장직에 대한 '거부'의사를 표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오후 7시가 지나도 김 회장은 나타나지 않았고 회장단은 회의를 시작, 1시간여 만에 '만장일치'로 김 회장을 재추대했다.
회장단과 고문단 29명중 15명이 불참, 정족수의 절반도 못 채운 상태였다. 하지만 김 회장은 13일까지도 재추대를 수락하지 않고 있다. 전경련의 현 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회장도 선출하지 못하는 전경련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자조의 목소리가 높다.
재계 관계자는 "단합된 모습을 보여도 모자랄 시기에 싫다는 사람에게 회장직을 떠밀어버리는 총수들의 행태는 너무한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사실 이러한 분위기는 진작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재계의 간판격인 이건희(李健熙) 삼성회장이나 구본무(具本茂) LG회장은 전경련 회장단회의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전경련의 책심 간부들도 대거 빠져나갔다.
전경련은 근본적으로 재벌의 이익집단이지만 개발시대 경제발전의 한 축이었고 대정부 대화의 통로로서 많은 역할을 한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조직원(회원사)들이 굳은 일은 떠맡지 않고 자신의 이득만 취하려 하는 사이 재계의 본산이라는 전경련의 입지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김 회장이 차기회장직을 아직 수락하지 않고 있는 진짜 이유는 '건강문제'가 아니라 '회원사들이 전혀 도와주지 않은데 있다'는 전경련 내부의 지적을 되새겨볼 만하다.
조재우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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