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은 왔지만 봄이 아니라는 뜻)이다.언젠가부터 춘삼월만 되면 밑도 끝도 없이 떠도는 '3월 위기설.' 은행들이 3월말 회계연도 결산을 앞두고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을 높이기 위해 대출금을 대거 회수, 금융경색→기업도산→주가ㆍ엔화 폭락→총체적 경제위기로 번진다는 '악성 시나리오'다.
지난 2년간 일본에선 '3월 위기'를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1999년 마이너스를 탈출한 성장률은 2000년 1ㆍ4분기엔 무려 10%(연율 기준)까지 치솟아, 위기는 커녕 불황 탈출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지난해 3ㆍ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2.4%로 곤두박질치고, 주가지수 1만3,000벽마저 쉽게 허물어지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일본경제는 아시아 환란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1998년이후 3년만에 '3월 위기'에 대한 극도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위기의 출발점은 금융 부실이다. 지난해 일본의 도산기업은 1만9,071개로 99년에 비해 23.4%나 늘어났고, 도산기업 부채총액도 전년대비 77.5%나 증가했다. 때문에 일본 은행들은 매년 6조엔 이상의 부실을 정리했음에도 불구, 부실채권 비율은 13%대에서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여기에 주식시장 침체로 최근 5개월동안 일본 은행들은 4조2,000억엔을 공중에 날렸다. 만약 닛케이지수가 1만2,000대까지 떨어지는 날이 온다면 거의 모든 은행들의 BIS 비율은 8%대 밑으로 추락하는 사태를 맞을 것이란 분석이다.
결산을 앞두고 대출에서 터지고, 주식으로 날려버린 일본 은행들의 선택은 결국 대출금을 회수하는 것 뿐이지만, 무차별 대출금 회수에 견뎌낼 기업은 없다. 결국 멀쩡한 기업까지 쓰러지고, 외국인자금이 빠져나가 증시와 엔화가치는 폭락(환율상승)하며, 실업자가 양산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3월 위기설'은 현실화할 것인가. 예측은 일본내에서도 엇갈리고 있다.
일본정부는 ▦올해 성장률이 최소한 1%대는 유지할 것이고 ▦외국인 매수세가 주가를 떠받치고 있는데다 ▦무엇보다 금융시스템 붕괴방지를 위한 최후의 안전장치인 공적자금이 항시 투입대기하고 있는 점을 들어 '위기설'을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BIS비상에서 벗어나려면 은행부실을 줄여야 하고, 부실을 줄이려면 경기가 살아나야 하나, 막대한 재정적자 누적으로 경기부양 여력이 소진된 만큼 위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만에 하나 '3월 위기'가 현실화한다면 그것은 일본만의 위기는 아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연쇄적인 주가폭락, 환율급등, 실물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
일본은행들이 해외여신까지 회수에 나선다면 97년말의 한국처럼 아시아 전체가 심각한 외화유동성 위기에 빠져들 수도 있다.
국제금융센터 이희두(李熙斗) 연구위원은 "3월 위기설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선 아시아 전체가 일본을 중심축으로 한묶음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대비책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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