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보기가 겁난다" 는 말이 다시 나오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 가 흥행기록을 세우고, 베를린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국영화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착각이다.멜로는 일상 묘사와 단선적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블록버스터는 허약한 뼈대로 육중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기본 설계조차 없이, 아니면 적당히 남의 것을 흉내내 지은 커다란 집처럼 불안하고 어설프기만 하다.
수 억원을 쏟아 부은 몇 개의 특수효과나 컴퓨터그래픽으로 "우리도 해냈다"는 식의 아전인수격 위안은 '비천무' '리베라 메' '단적비연수' 에서 이미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는 아직도 그 '망령' 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쉬리' 의 성공이 단순히 할리우드식 액션과 멜로의 결합이란 아이디어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 '공동경비구역 JSA' 까지 이어진 남북분단이란 소재로 액션물을 만들면 대충 성공하리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광시곡'을 낳았다. '광시곡' 의 허점은 재미나 미학의 빈곤 차원이 아니다. 영화적 설득력이 약하고 줄거리 연결이 잘 안되는 영화에 30억원을 쏟아 부었다.
'천사몽'(감독 박희준)이 17일 개봉된다. 제작비 38억원, 홍콩 스타 리밍(黎明) 주연.
시공간을 초월하는 SF 판타지 액션에 걸맞는 250컷에 해당하는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를 자랑하는 블록버스터이다.
경찰특공대원 성진(전생에서는 딘)과 전생(前生) 실험장치를 개발한 과학자의 딸(정은혜)이 '딜문'이라는 나라로 설정된 전생과 현재를 넘나들며, 운명적 사랑과 엇갈린 인연을 펼친다.
전생에서 신분의 벽으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남녀, 그 여자에 무섭도록 집착하는 황 장군을 연상시키는 샤닐이라는 존재는 '은행나무 침대'나 그 속편격인 '단적비연수'와 너무나 닮아있다.
그 뿐이 아니다. '퇴마록'을 떠올리는 사이비교주와 악령의 존재, 인도 카스트제도 같은 딜문의 계급제도, 유럽영화의 이미지를 닮은 딜문의 원로원은 '천사몽'을 국적 없는 영화로 만들어 버렸다.
독창성의 부재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영화적 리얼리티의 결함이다. 박사와 딜문 대장군 부인의 책 읽는 연기에 비하면 한국경찰로 나오는 리밍의 어색한 우리말 대사는 오히려 애교스럽다.
한눈에도 알수 있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연출한 옛날 딜문의 전경과 실제 건물에서 촬영한 내부 모습의 차이, 원시와 첨단의 무분별한 뒤섞임.
단 한 장면으로 갑자기 깊은 사랑의 관계로 뒤바뀌는 딜문의 여전사 쇼쇼(이나영)와 딘의 친구 마틴(김지무).
'천사몽'은 만화적이다. 앞뒤 상황이나 정서를 고려하지 않고, 내키는대로 "이렇게 하면 재미있고 해결될 텐데"하는 식의 장면을 연출하고 상황을 전개한다.
그것이 때론 시각효과를 주기도 하지만, 영화 전체의 일관성과 리얼리티를 앗아가 버렸다. 중요한 것은 크기도, 테크놀로지도 아닌, 영화의 기본인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다.
최근 선보이는 몇 편의 영화들이 엄청난 비용을 치르면서 이런 교훈을 증명해 주고 있다.
SF액션'천사몽'은 특수효과를 이용해 전생과 현재의 엇갈린 사랑을 그렸다.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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