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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소설집 '브라스 밴드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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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의 소설집 '브라스 밴드를 기다리며'

입력
2001.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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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소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위와 견딤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길> 에서)소설가 김인숙씨가 네번째 소설집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문학동네 발행)를 냈다.

그의 서사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는 언제나 지금 우리가 발딛고 있는 현실이다. 벌써 등단 20여년, 그는 초기의 인간 욕망을 포착하는 치열한 감수성의 세계에서 80년대에는 민중적 세계관으로, 90년대 이후에는 여성적 정체성에 바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폭넓은 시야로, 우리의 인간 실존을 탐색해왔다.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에 실린 8편의 소설은 이러한 그의 현실지향적 시선과 탐구가 장인적 솜씨로 조탁된 작품들이다.

그는 정밀한 현실 취재에 바탕해 거기 살고 있는 인간 내면의 탐사로 나아간다. 김씨가 바라보는 내면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통의 부재' 다. 사람 사이의 소통 부재는 곧 정체성의 상실을 가져온다.

정체성의 상실은 삶의 열정과 목표의 상실을 불러오고, 그 삶은 오직 '견딤'으로써만 지속될 수밖에 없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은행원, 8년을 시간강사로 전전하다 어렵게 대학 교수가 된 사내, 속도 경쟁에 소모되어 가는 카피라이터, 성공하지 못한 30대 후반의 영화감독, 이혼을 바라는 부부나 이혼한 남녀들이다.

그들은 모두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소시민이다. 그들은 꿈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 생이 무료해졌다. 김씨는 이들을 '아무도 아닌 사람' '한 번도 존재해본 적이 없는 사람' '언제나 몸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 표현한다.

지난해 현대문학상 수상작 '개교기념일'은 합의 이혼을 위해 법정에 서기로 한 날 사고로 남편을 잃고 결국 이혼도 못한 채 친정으로 온 여자의 이야기다.

이웃 컴퓨터 수리점에는 또 다른 자신만의 상처를 품고 사는 남자가 있다. 남자는 여자가 맡긴 컴퓨터를 수리하다가 그녀의 일기를 훔쳐보게 된다.

"나는 사라졌어." 하지만 "대체 사라져버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언제 한번 존재해본 적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여자와 남자는 둘 다 끊임없이 현재를 부정하며 새로운 몸으로 거듭나기를 원하는 평균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표제작은 30대 영화감독이 친구와 아내의 죽음을 지켜보며 스스로의 내면을 응시하는 이야기다. 암 선고를 받은 주인공의 친구 기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쫓기 위해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달라고 한다.

그는 친구의 부탁을 받아들이지만 이번에는 아내의 암 선고를 받는다. 그가 죽음의 촬영에서 발견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모습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나를 응시하고,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찍고 있는 것 같았다."

타인과는 물론이고 자신과의 진정한 소통마저도 잃어버린 소설의 주인공들이 찾아야 할 것은 삶의 실체이다.

"내 청춘에 걸었던 약속, 내가 죽는 날까지 내 삶을 증거해줄 약속."(

에서). 그의 소설은 그 약속, 삶의 실체를 찾아나서야 할 30~40대의 삶에 대한 증언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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