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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씨 세번째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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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씨 세번째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입력
2001.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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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독일에 유학 중인 허수경(37)씨가 세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창작과비평사 발행)를 냈다.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1988)와 두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1991)으로 한 시절 우리 정서를 자유자재의 능란한 모국어로 표출했던 '진주 가시내' 허수경. 그는 1992년 초 두번째 시집을 낸 직후 느닷없이 독일로 갔다.

"고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였다. 국문학을 전공한 허씨는 얼마간 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운 뒤 그곳에 가 뮌스터대학에서 고고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박사학위 논문도 거의 마무리한 상태다. 전공은 근동(近東) 고고학. 매년 몇 달씩은 시리아, 터키 등지에서의 발굴작업을 벌인다.

그가 한국에 다녀간 것은 두 번이다. 세번째 시집을 내면서도 그는 발굴작업 때문에 한국을 찾지 못했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느나'는 10년 간 떠나 있으면서도 모국어를 벼리는 손을 놓지 않은 정신의 궤적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 결국은 시로 가기 위한 길이다."

새 시집에 실린 그의 시들을 관류하는 두 개의 큰 이미지는 '전쟁'과 '아이'로 읽힌다. 전쟁은 그가 중근동 지역을 답사하면서 실제 마주친 현실의 모습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그악스런 모습을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아이는 바로 그에 대비되는 인간 영혼의 본래 모습에 대한 상징일 것이다. 시집의 표제작에서 허씨는 '아이들은 장갑차를 타고 국경을 지나 천막 수용소로 들어가고 할미는 손자의 손을 잡고 노천 화장실로 들어간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빛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아이의 영혼에 엉긴다 그러니까 누구를 기다리는 영혼처럼 허덩거리며 하모니카의 빠각이는 이빨에 실핏줄을 끼워넣는다'고 노래하고 있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시인의 영혼은 아이의 영혼에 엉기고 싶어한다.

허씨는 "낯선 종교와 정치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나라는 한 사람이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을 떠나, 한국인이 아닌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몸의 눈을 닫고 마음의 눈으로만" 세계를 들여다보려 했다는 말처럼, 이번 시집에 실린 시어들은 이전의 능청맞고 청승스러울 정도의 우리말 구사와는 표현방식이 많이 달라보인다. 하지만 모국과 떠나온 사람들에 대한, 또한 시에 대한 그리움을 숨길 수는 없다.

'깊은 바다가 걸어왔네/ 나는 바다를 맞아 가득 잡으려 하네/ 손이 없네 손을 어딘가에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손이 없어서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눈이 없네/ 눈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인다 돌아선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고 싶다/ 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다 두고 왔네//

글썽이고 싶네 검게 반짝이고 싶었네/ 그러나 아는 사람 집에 다, 다, 두고 왔네'(<바다가> 전문)

허씨는 시집 후기에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돌아가리라는 약속을 하지 않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면서도 "시를 쓰는 나는 한국어라는 바다에서만 머물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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