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물감을 흠뻑 뒤집어 쓴 산낙지가 도화지 위에 미끄러지듯 놓인다. 괴로운 듯 몸을 비트는 낙지의 움직임에 따라 도화지는 빨간 흔적으로 채색된다.낙지는 곧 물감의 화학약품 독성으로 서서히 움직임을 멈춘다. 물감통 옆에는 다음 낙지가 순서를 기다린다. 5~6마리의 낙지가 '붓'을 대신하고 나서야 화가의 작품은 완성된다.
산낙지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예술가 김준(金俊·35)씨의 작품활동이다.
"엽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동물학대라나요. 당신은 시뻘건 초고추장에 산낙지를 찍은 뒤 잘게 씹어 먹지 않습니까? 버둥대며 입 천정에 달라붙는 낙지일수록 '별미'라고 말하지 않나요"
그는 산낙지를 즐겨 먹는 사람들이 오히려 '동물학대자'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이중성과 맛, 멋의 폭력성을 보여주고 싶어 낙지를 선택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회를 뜨는 생선, 소 등은 먹기 전에 이미 죽은 상태라 인간의 이중적 잔인함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김씨의 '낙지화'에 대해 "신선하다"하는 평가도 있지만 아직은 "잔인하다"는 '혹평'이 우세한 편.
홍익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엔세대 공학관내 게임소프트웨어 벤처업체 '디지털 피봇'의 아트디렉터를 일하는 김씨는 1993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입선 등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다. 자칭 '언더그라운드 화가'인 김씨는 다음달 서울에서 '낙지 호러 픽쳐쇼'라는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강훈기자
hoony@hk.co.kr
김현정기자
tryou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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