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부착하면 호흡이 이뤄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 기간동안 얼마나 병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지 여부다. 호흡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 치료를 소홀히 할 경우 병은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자금시장이 급속히 안정 기미를 찾아가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현저히 다르다.
정부당국자들은 각종 지표를 들이대며 장밋빛 전망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자금시장 관계자들은 아직까지 회의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이 착시(錯視)현상에 빠져 구조조정을 게을리 할 경우 회사채 신속인수제가 끝나는 연말 이후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지표 상으로는 호조
올초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이 순발행으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우려됐던 부분은 신용등급간 가산금리가 오히려 확대돼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심화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최근들어서는 발행 자체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가산금리도 축소 기미를 보이고 있다.
회사채 3년물(AA-)과 무위험채권인 국고채 3년물의 금리 격차는 지난해 10월말 0.95%포인트에서 1월말 1.70%포인트로 계속 확대됐으나 9일 현재 1.57%포인트로 모처럼 축소됐다. CP의 기준물(A1등급)과 A3 등급간 금리차도 지난해말 0.88%포인트에서 1월말에는 0.84%포인트로 줄어들었다.
은행 예금에만 돈이 집중돼 시중자금이 기업들에게 흘러 들어가지 못했던 문제점도 해소 기미를 보이고 있다. 1월 한달간 7조4,336억원의 수신 증가세를 보였던 투신사에는 이달들어서도 5일까지 2조4,611억원이나 늘어났다.
1월 수신증가를 주도했던 머니마켓펀드(MMF) 뿐 아니라 채권형 투자신탁 등 대부분 상품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기업의 긴급자금수요를 나타내는 당좌대출한도 소진율은 지난해 10월말(21.2%) 이후 계속 하락해 5일 현재 16.8%까지 떨어져 기업들이 돈가뭄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줬다.
▽대세로 이어질까
정부는 지난 10일 금융정책협의회를 열고 회사채의 원활한 차환발행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은행이 이달중 5,000억원 수준의 회사채를 인수하고 2조5,000억원 가량의 프라이머리 CBO(회사채 담보부증권)도 발행키로 했다.
또 신용보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이달 중 국민, 신한, 하나은행 등 3개 은행이 5,000억원 수준의 CLO(대출채권 담보부증권)을 발행토록 했다. 자금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연초부터 계속됐던 각종 후속조치의 하나다.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 조치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로 인한 지표상 효과에 대해 너무 과신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금융연구원 고성수(高星洙)박사는 "지표상의 개선은 금융시장 메커니즘이 정상화한데 따른 것이 아니고 회사채 신속인수, 신용보증 확대 등 인위적인 조치에 힘입은 것"이라며 "자금순환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업구조조정을 통해 기업들의 체질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양대 나성린(羅城麟)교수도 "정부의 임시방편적 대책만으로 시장을 살리겠다는 것은 미국 경기 호황 등 요행이 뒤따라주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며 "기업 구조조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지표상의 개선은 조그만 외부 충격에도 금세 악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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