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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淸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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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淸 멸망

입력
2001.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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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2월12일 선통제(宣統帝) 푸이(溥儀)가 퇴위함으로써 청(淸) 왕조가 멸망했다. 청조(淸朝)의 멸망은 중국 민중이 전제 군주제와 결별했음을 뜻한다.그 전해 중국혁명동맹회가 이끈 신해혁명(辛亥革命)의 성공으로, 그 해 1월1일 쑨원(孫文)을 임시 대총통으로 한 난징(南京) 정부가 수립돼 삼민주의를 이념으로 한 중화민국이 발족했다. 물론, 갓 태어난 이 공화국에는 반제 반봉건 혁명의 수행이라는 험난한 과제가 남아 있었다.

청조의 기원은 1616년 만주족 누르하치(奴兒哈赤)가 선양(瀋陽)에 세운 후금(後金)이다.

국호를 청(淸)으로 바꾼 것은 1636년 황타이지(皇太極: 태종)인데, 그 때부터 누르하치는 청 태조로 불리게 됐다. 청 이전의 통일 왕조인 명(明)을 멸망시킨 것은 1644년 이자성(李自成)이 이끄는 농민군이다. 청 태종의 아들 순치제(順治帝)와 그를 이은 강희제(康熙帝)는 농민 반란과 오삼계(吳三桂) 상가희(尙可喜) 경중명(耿仲明) 삼번(三藩)의 난을 진압하며, 중국을 통일했다.

두 살에 제위에 올라 여섯 살에 퇴위한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1906~1967)의 운명은 청이 망한 뒤에 오히려 더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그는 34년부터 제2차세계 대전이 끝나는 45년까지 일본의 괴뢰국가 만주국의 왕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 일본으로 피하다가 소련군에게 체포돼 하바로브스크에 억류되었으며, 50년 공산 정권하의 중국에 송환되어 수감되었다가 59년에야 특사로 풀려났다.

식물원 정원사로 만년을 보낸 그는 죽은 뒤 베이징 시내 팔보산(八寶山) 공동묘지의 인민납골당에 안치되었다가, 95년 1월에야 베이징 남서쪽 허베이성(河北省) 이현(易縣)에 있는 청나라 황릉(皇陵)으로 이장돼 황제 몫의 음택(陰宅)을 되찾았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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