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들어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부쩍 강조하고 있는 북한. 그 과학기술의 중심에는 물론 정보통신(ITㆍinformation technology)산업이 있다.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IT업계 기업인 2명에게 북한 IT산업의 실상과 가능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조현정(趙顯定)
1957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1985년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으며, 대학 재학중이던 83년 우리나라 소프트웨어회사 1호인 비트컴퓨터를 창업했다.
의료정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특히 성가를 올려 89년 미 월스트리트 저널지로부터 '한국의 떠오르는 별'로 소개되기도 했다. 95년부터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인하대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윤경림(尹京林)
1963년 경기 청평에서 태어났다. 86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88년 과 99년 각각 KAIST에서 경영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88년부터 97년까지 데이콤에서 근무했고, 97년 하나로통신㈜으로 옮긴 뒤 98년 12월 당시 업계 최연소 이사로 승진했다. 현재는 사업담당 상무이사로 대북 사업 등 각종 신규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북한은 언제 무슨 일로 다녀 오셨습니까.
▦조현정= 1월 31일에서 2월 3일까지 3박4일 동안 다녀왔습니다. 북한 '조선콤퓨터센터'로부터 IT산업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초청장을 받았지요.
제가 아는 재미동포 목사 한 분이 북한을 왕래하는데 그 분에게 북한 사람들이 IT산업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 봤나봐요. 그래서 그 분이 저를 추천을 하게 된 겁니다.
초청장은 지난 해 10월말에 왔습니다. 차일피일 못가다가 이번에 가게 됐는데 우연찮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 직후와 맞물려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윤경림= 저는 지난 해 7월과 10월 두 번 갔습니다. 지난 해 4월 북측의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협) 사람들과 북경에서 만나 양측의 협력사업에 대해 논의를 했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방문했던 거죠.
저희 회사가 북한과 협력사업을 벌이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 입니다. 우선은 장기적 교두보를 확보하자는 차원이고, 두번째는 실제적 사업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해서, 그리고 세번째는 이미지 선점을 위해서 입니다.
이 세번째 목표는 저희 회사의 이름 덕을 봐서 달성한 것 같아요. 북한측 파트너가 민경협 산하 삼천리총회사라는 곳인데 그 쪽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도 얘기했습니다만 두 회사 이름을 합치면 '삼천리 하나로'가 되잖아요. 그래서 서로 '뭔가 좋은 징조가 아니냐'는 말을 했습니다.(웃음)
▦조현정= 사업의 가능성은 어떻던 가요?
▦윤경림= 제일 먼저 시작한 사업이 스플리터(Splitterㆍ통신망에서 전화선과 인터넷 전용선을 나누는 장치)를 평양의 공장에서 단순 임가공 형태로 생산하는 일인데요, 아직 시판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품질이나 가격경쟁력 모두 뛰어납니다.
북측으로서도 안정적 구매자를 확보한 셈이니까 좋은 것이고요. 앞으로는 국내 벤처기업과 손잡고 북한과 소프트웨어 개발사업도 함께 해 보려고 하는데 사업전망은 괜찮습니다.
북한도 언어처리 프로그램이나 3D 애니메이션프로그램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북한이 개발한 바둑 프로그램인 '은바둑'을 현재 저희 회사 사이트에 올려 놓고 있는데 한 번 보시면 알겠지만 상당히 뛰어납니다.
▦조현정= 사실 북한의 IT수준이 우리보다 몇 년이 뒤떨어졌다는 식의 얘기는 '개가 사람을 물었다'는 정도로 무의미한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장점을 키워주면서 협력을 확대하는 일 입니다. 그들은 기초과학 교육수준이 높기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필요한 수학적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그렇다 보니 인공지능이나 퍼지에는 강합니다. 물론 시장의 논리는 아직 모릅니다만 이것만 이해시키면 발전 가능성이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IT산업에 대한 북한의 열의는 어땠습니까.
▦윤경림= 열의가 대단히 높을 뿐 아니라 국가 정책적으로도 뒷받침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서 조 사장께서 시장에 대한 이해만 시키면 상당한 발전의 가능성이 보인다고 했는데, 저는 그들도 이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봅니다.
소프트웨어에 관해 협의를 하는데 그 쪽 담당자가 3D애니매이션의 시장성에 대해 깊이있게 물어 보는 등 큰 사업적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때가 지난해 7월인데 이제는 김정일 위원장까지 공개적으로 개혁ㆍ개방을 강조하고 있으니 그 열기는 더 하겠죠.
▦조현정= 맞아요. 제가 북한을 간 시점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직후여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분위기도 좋았고,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도 강한 것 같았습니다.
제 강의가 원래 60명을 대상으로 할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500명으로 바뀌었습니다. 북한 IT산업의 핵심인 조선콤퓨터센터, 수학연구소, 약전연구소, 평양프로그램센터, 김일성대, 김책공대의 교수와 연구원들 대부분이 모두 참가한 것이죠. 강의도 북한 주체사상 학습의 상징인 인민대학습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저는 안내원 없이 평양 시내를 돌아다녔고 찍은 필름을 현상해서 검사를 받지 않고 그대로 갖고 왔어요. 파격적인 대우였지요. 북한 분위기가 달라지긴 달라진 것 같아요.
▦윤경림= 강의에서 주로 어떤 것을 강조하셨습니까?
▦조현정= 한마디로 '늦은 산업화보다는 빠른 정보화'에 주력하라고 했습니다.
산업기반이 약한 상황에서 당신들 희망대로 인민들을 잘 살게 하려면 정보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죠. 인도를 보라고 했습니다.
인도도 산업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IT산업을 발전시켜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 소프트웨어 생산국이 됐고, 나스닥에 상장하는 기업도 많이 나오고, 우수한 두뇌집단도 갖게 됐습니다.
이런 인도 모델을 북한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정보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까지 정보를 만들어 본 적도 없고 정보가 돈이 된다는 개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컴퓨터도 정보통신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과학적 시각으로 봅니다. 그래서 저는 정보를 공개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과 휴대폰을 들여 오라고도 했지요.
-북한과의 IT 협력을 위한 과제가 있다면요.
▦조현정= 남북의 표준화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금은 쓰는 용어부터가 다릅니다.
일례로 리눅스(Linux)를 그들은 리낙스라고 하고 왠(WANㆍwide area networkㆍ장거리통신망)을 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글프로그램과 자판도 다릅니다.
우선 그 쪽 키보드에는 한글 자음과 모음이 나와있지 않습니다. 컴퓨터를 중국을 통해 대만이나 일본, 미국에서 수입하다 보니까 그렇기도 하고, 북한에서 생산되는 것이라고 해도 쌍자음이 분리돼 있는 등 우리의 자판이랑 상당히 차이가 큽니다.
소프트웨어 개발방법도 차이가 납니다. 조선컴퓨터센터의 프로그램연구실을 갔더니 연구자의 책상에 펜티엄1급 컴퓨터 한 대만 달랑 있더라구요.
그러니까 그들은 혼자서 컴퓨터의 원리를 연구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 프로그램은 자체 개발 못지 않게 유용한 기능을 응용해서 그것들을 서로 끼워 맞추는 것이 필요하거든요. 개발 방법론에 관한 통일 교재도 시급합니다.
▦윤경림= 저는 장기적으로 네트워크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북한은 랜(LANㆍlocal area networkㆍ근거리 통신망)은 갖춰져 있는 것 같은데 왠(WAN)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일반 가정에 컴퓨터가 얼마나 보급됐는지는 가보지 않아 정확히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로 IT산업은 이런 네트워크화가 이루어 지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물류비용과 통신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물건을 주고 받기 위해서나 서로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꼭 중국을 경유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당장 개선되기는 어렵겠지만 가장 큰 장애입니다.
▦조현정= 법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폐기하는 컴퓨터를 모아 북한에 PC보내기 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바세나르법(분쟁국가나 테러국가에 대한 다자간 전략물자 수출통제체제)때문에 386급 이하 컴퓨터만 보낼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 이상은 군용으로 전용되면 위험하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우리처럼 펜티엄Ⅲ가 일반화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에서도 팬티엄ⅠㆍⅡ정도는 연구실에서 다 사용하는데, 웃기는 발상 아닙니까.
정부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줄이는 것이 통일비용을 절약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발상으로 좀더 전향적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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