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가 물량공세를 시작했다. 지난해 6월 3차 일본대중문화 개방 조치로 극영화의 제한이 없어지고, 일부 애니메이션까지 풀리면서 일본영화의 국내상영이 급증하고 있다.1999년 6편이던 것이 지난해는 4배로 늘어 홍콩, 유럽영화와 맞먹는 무려 24편이나 됐다.
올해는 더 많은 작품이 몰려올 조짐이다. 이미 1월에 2편이 개봉했고, 2,3월에는 10여 편이 한꺼번에 극장을 찾는다. 시장점유율도 1999년 3.1%에서 지난해 7.5%(200만9,000명)로 높아졌다.
그러나 우려한 12~15%까지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개봉 편수는 많아지고 있지만 개방 초기와 달리 궁금한 장르는 한번씩 다 봤기 때문이다.
일본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든 반면, 개방 확대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들도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 들어오는 일본영화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러브레터' 류의 감성멜로. 다음은 '철도원' 이나 '춤추는 대수사선' 과 비슷한 휴먼드라마, 아니면 '쉘 위 댄스' 류의 코믹 휴먼드라마다.
또 '링' 과 분위기가 흡사한 공포물로 학교를 무대로 한 작품들이다. 그리고 유명감독의 애니메이션과 극소수 마니아를 위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가 있다.
대부분 일본에서의 성공과 해외에서의 호평을 국내 흥행에 이용하려는 계산이 깔려있다. 그래서 수준이 떨어지지만 감독, 배우가 같다는 이유로 '운' 을 기대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2,3월에 개봉할 영화들 역시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처음과 달리 극영화는 갈수록 관객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코미디도, 멜로도 이제는 뻔하다"는 인식이 심어졌다. 실제 '춤추는 대수사선' (서울 28만9,000명)보다 불과 4개월 뒤에 개봉한 '화이트 아웃' 의 경우 관객이 고작 4만8,000명에 불과했다. '링' (2만4,000명)과 뒤이은 '링 라센'(4,000명)의 차이도 이를 증명한다.
애니메이션도 우려했던 만큼의 충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전세계 어린이가 난리를 쳤다는 '포켓몬스터'도 지난 연말에 개봉해 20만명을 채우지 못했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도 겨우 6만명, '무사 쥬베이'는 1만2,000명을 채우는데 그쳤다.
결국 일본 애니메이션은 대중성보다는 마니아 중심으로 관객이 형성되고 있으며, 그들은 이미 다른 채널을 통해 대부분의 작품을 봤기 때문에 일부러 다시 극장을 찾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대현기자
leedh@ hk.co.kr
■아바론 - 실사에 디지털애니 섞어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에게 시간은 미래이다. 그 미래는 고도의 네트워크 정보사회, 아니면 사이버와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한 세계이다. 그 속에서 문명과 인간 실존의 문제를 제기하는 그의 영화는 철학적이고 우울하며 실험적이다.
'아바론(Avalon)'은 '공각기동대' 이후 5년 만에 그가 침묵을 깨고 내놓은 신작이다.
가까운 미래, 젊은이들이 가상전투게임에 몰입한다. 고독한 여전사 애쉬가 아더왕의 전설에 기초한 게임 '아바론' 의 최종 단계인 '클래식 SA'에 도전한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런데 진짜 현실은 도대체 어디인가.
폴란드에서, 폴란드 배우를 기용해, 폴란드어로 찍은 영화는 주제와 양식에서 '공각기동대' 와 맥을 같이 한다.
황토색으로 탈색시킨 실사영화에 디지털 애니메이션 기법을 도입한 그의 '제3의 장르' 실험은 양쪽의 장점을 결합시켜 판타지적 효과와 사실성을 극대화하려는 동시에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효과로 작용한다. 그의 영화는 여전히 마니아 용이다.
■생일선물- 전형적인 일본멜로
이와이 순지 감독의 출세작 '러브 레터' 를 제치고 일본 멜로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으니 대단한 작품이라고 지레 짐작하면 실망한다.
여주인공이 마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루' 의 소녀 메이의 감성을 가졌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했다는 분석도 우리에게는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31살의 노총각 관광가이드 쇼키치(키시타니 고로)가 프랑스 파리에서 우연히 실연으로 상심한 스튜어디스 아키코(와쿠미 에미)를 만난다.
파리와 도쿄를 무대로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끝없이 거짓말을 하는 쇼키치와 사랑보다는 조건을 중요시하던 아키코의 에피소드와 갈등과 감동이 이어지는, 보기에 따라서는 유치한 전형적인 일본 멜로물이다. 키시타니 고로는 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디에 떠있나' '개 달리다' 의 주연도 맡았던 배우이다.
■도쿄맑음 - 잘아는 배우들이 주인공
'러브 레터'의 기획자(마츠시다 치아키)와 여배우(나카야마 미호)가 다시 만났다. '쉘 위 댄스' 의 대머리 총각 다케나카 나오토가 감독 겸 남자주연을 맡았다. '쉘 위 댄스' '쌍생아' '실락원'의 세 감독은 카메오를 자청했다.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와 요코 부부의 포토에세이 '도쿄 맑음(東京日和)' 이 원작이다.
너무나 순수해 신경질적인 아내와 그런 아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남편의 이야기가 맑은 하늘처럼 그려진다. 다분히 배우들의 국내 지명도를 노린 작품이다.
■무사 - 흔하디 흔한 사무라이 劇
감독이 '철도원' 의 후루하타 야스오, 배우는 '나라야마 부시코' 의 오가타 켄이라고 내세운다. 마치 450만명을 동원한 '철도원' 처럼 감동적이고 재미있으며, '나라야마 부시코'의 작품성도 있는 것처럼. 그러나 그 어느 쪽도 아니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 쪽은 더욱 아니다. 지극히 통속적이고 허풍스런 흔한 옛날 일본 사무라이 영화. 권력 승계를 놓고 벌어지는 암투 속에서 의리를 지키는 이야기이다. 할리우드 서부극을 적당이 변주했다.
■여우령 - 음산한 분위기 공포물
촬영 때는 분명히 없었던 물체가 시사회 때 필름 위에 희미하게 나타난다. 이후 조연 여배우가 추락사하고, 감독(야나기 유레이)은 의문을 추적해 간다.
'필름에 얽힌 비밀' 이 시각적 공포 보다는 관객의 내면 심리를 자극한다. '링' '링 2' 의 나카다 히데오 , 다카하시 히로시가 감독, 각본을 맡았다. 스즈키 코지가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소설 '링'을 영화화 하는 것을 허락했다는 후문.
■하나코 - 일본판 '여고괴담'
여중괴담이다. 물론 원조는 '학교 괴담' 이고, '화장실의 하나코'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화장실이라는 밀실의 공포, 그곳에 사는 귀신, 사람 몸에 들어간 귀신을 보는 아이, 11년 전 같은 학교에서 실종된 언니가 있는 사토미(마에다 하이). 박기형의 '여고괴담' 을 본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다. 감독 츠수미 유키히코.
■가면학원 - 이지메 다룬 화제작
베스트셀러 작가 소다 오사무의 원작은 만화로도 출판됐다. 왕따들이 가면을 쓰고 광란의 시간을 보내는 파티장에서 강제로 가면이 벗겨진 한 소년이 자살을 한다.
일본의 사회문제인 '이지메' 를 소재로 10대들의 현실과 문제점,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시선을 끌여들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마츠 다카시 감독은 탐정추리물이면서도 10대들의 심리에 집착해 영화 전체의 구성을 산만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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