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본격적인 크루즈 여행이 도입된 지 1년이 돼 간다. 말레이지아 국적의 스타크루즈사가 부산 다대포와 일본의 항구 도시를 잇는 호화 유람선을 처음 운항한 것이 지난해 3월 12일. 아직 대중적인 여행의 형태로 자리잡지는 않았지만 안락한 휴식여행을 원하는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경제적인 효과도 만만치 않다. 정박비, 유류비 등 지난해 유람선이 부산항에 풀고 간 돈만 170여 억 원.
대규모의 정박시설이 없고 출입국관리소도 가건물에 불과하지만 경제적 유혹에 힘입어 부대시설에 대한 투자도 늘어날 전망이다.
외화시리즈 '사랑의 유람선'으로 먼저 알려진 크루즈 여행. 어떤 여행일까. 지난 달 중순 스타크루즈의 대형 유람선 토러스호를 타고 일본의 항구 도시를 돌아보았다. 4박 5일.
부산의 다대포를 출발해 일본의 고베(神戶) 고치(高知) 가고시마(鹿兒島)에 들렀다가 다시 다대포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해가 질 무렵 배는 출발했다.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배로 떠나는 일본행. 이제 흔치 않은 여행법이지만 항공로가 발달하기 전에는 모두 이 바닷길로 다녔다.
얼마나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까. 어둠이 내리면서 하얀 배는 오렌지빛 조명으로 치장했다. 대한해협을 건너는 밤길 내내 갈매기들이 그 불빛을 따라 왔다.
그들도 조명을 받아 오렌지빛으로 반짝거렸다. 새가 아니라 요정 같았다.
배는 꼬박 20시간을 달렸다. 지루하지는 않았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를 구석구석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몇 시간이 쉽게 지나갔다.
토러스호는 길이 150㎙, 폭 25㎙. 승객 960명과 승무원 400명이 탄다. 거대한 수상 호텔이다. 극장은 물론 식당, 수영장, 바, 카지노가 있다. 헬스클럽, 사우나도 물론 있다. 객실이 훌륭했다. 방의 크기는 작지만 모든 것이 규모있게 갖춰져 있다.
인상적인 것은 음식 맛이다. 배에는 일식당과 중ㆍ양식을 함께 하는 식당 등 모두 두 곳의 식당이 있다. 손님의 기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한다.
매끼가 제공되고 음료와 주류는 따로 사야 한다. 음식의 모양과 맛이 최고급 호텔 수준이다. 먹는 즐거움 하나만으로도 본전을 뽑은 것 같다.
배가 짙은 안개를 밀어내며 처음 도착한 곳은 고베. 1995년 1월 리히터 규모 7.2의 지진이 일어났던 곳이다. 6,000 명 이상이 죽었다. 이제 붕괴의 현장은 없다. 더욱 깨끗하게 증축된 건물과 도로가 반겼다.
배 밖으로 나왔다. 주어진 시간은 약 4시간. 산노미야(三宮)가 가장 번화한 곳이다.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쇼핑의 천국이다. 500여 개의 상점이 밀집된 쇼핑 아케이드가 있다.
구경만 하더라도 흐뭇하다. 포트타워(108㎙)도 눈길을 잡는 고베의 명물이다.
배는 방향을 틀었다. 오사카(大阪)만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시코쿠(四國)섬 남쪽을 빙 돌아 닿은 곳은 고치.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이다. 고치성과 재래시장이 볼 만하다.
고치성은 시내의 한 가운데 있다. 천대부인의 동상이 성 앞에 서 있다. 전장에 나가는 남편에게 전 재산을 털어 명마를 사 주었다는 여인이다.
관광객이 성 안의 망루까지 올라갈 수 있다. 검은색과 흰색만으로 치장한 성은 간결하면서도 위엄있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망루에서 내려다 보는 작은 항구의 모습도 아름답다.
성에서 10분 거리에 재래시장이 있다. 재래시장이지만 서울의 백화점 만큼이나 깨끗하다.
우동과 초밥을 파는 가게가 있다. 300엔을 주고 우동 한 그릇을 사 먹었다. 맛이 깔끔하고 담백했다. 우동을 말아주는 아주머니가 무척 친절했다.
토러스호는 다시 남서쪽으로 항해했다. 마지막 기항지인 가고시마로 향했다. 일본 열도의 끄트머리인 가고시마는 원래 따뜻한 곳. 그러나 도착했을 때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무척 오랜 만에 보는 눈이다.
조선에서 끌려 온 도공 심수관(沈壽官)의 가마터가 있고 최고의 명물인 활화산 사쿠라지마(櫻島)가 있다.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사쿠라지마는 하얀 눈을 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곧 녹는다. 화산의 열이 분출되기 때문이다.
펄펄 살아있는 활화산 사쿠라지마는 가끔 화산재를 쏟아낸다. 운이 좋으면 그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았다.
배가 항구를 출발할 무렵 갑판에서 화산을 바라보고 있던 일본인 관광객들이 갑자기 환호했다. 검은 화산재가 남쪽 봉우리에서 터져 나왔다.
거대한 구름처럼 하늘에 오른 화산재는 바람을 타고 바다로 흘렀다. 검은 재는 구름에서 비가 떨어지듯 바다로 쏟아졌다. 장관이었다.
가고시마를 떠나 부산으로 돌아오는 바닷길은 험했다. 선장의 안내방송이 있었다. 높이 6㎙ 정도의 파도가 칠 것이라 했다.
1년에 한 두 번 만날 수 있는 날씨라고 한다. 파도 앞에서는 거대한 배도 소용이 없었다. 미리 멀미약 등을 준비하지 못한 승객들은 고통스러웠겠지만 멀미를 이겨낸 승객은 또 다른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무릇 배여행은 이렇게 출렁거려야 한다는 농담을 주고 받았다.
■댄스.디너파티에 적극 참가해야 '재미 배가'
크루즈 여행의 매력은 사람과의 어울림이다.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이방인끼리 한 배를 타고 즐거움을 나누는 여행이다.
이것 저것 귀찮다고 객실에만 들어있으면 잠만 자는 여행이 된다. 스타크루즈 한국 지사 최중각 영업팀장의 도움말로 크루즈 여행 즐기는 법을 간추린다.
먼저 배 안의 이용 시설을 꼼꼼하게 확인한다. 여행 중 배의 모든 시설은 '내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껏 활용해야 한다.
출발 전 여행사에 문의하거나 출발 후에는 한국인 승무원에게 묻는다. 한국 승무원을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전 승무원이 가슴에 출신국의 국기를 달고 있다.
준비물을 꼼꼼하게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수영복, 운동화는 물론 선장과의 디너파티를 위해 개성 넘치는 정장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말 것. 배 안의 전원은 220V가 기본이고 필요한 경우에는 어댑터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매일 배 안에서 발행돼 객실로 배달되는 소식지 스타 네비게이터(한글판도 있음)에 하루의 일정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다.
적어도 하루에 두 가지 행사를 꼽아놓았다가 참가하는 게 좋다. 특히 배 운항시설을 돌아보는 브리지 투어, 선장과의 만찬 등은 크루즈 여행이 아니면 경험하기 힘들다.
배에서는 매일 저녁 각종 쇼가 무대에 오르고 댄스 파티가 열린다. 부끄러움이 많은 한국 여행객들은 참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나라의 여행객을 사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낮 항해 시에는 체육 프로그램과 종이접기, 요리강습 등 교양강좌도 열린다. 역시 부담을 갖지 말고 참가하는 것이 좋다.
크루즈 승무원들의 기본적인 업무 중 하나는 승객의 말벗이 되는 것이다. 스낵바 등 비교적 한산한 시설에서는 각국에서 온 승무원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약간의 영어와 한자, 그리고 바디 랭귀지를 보태면 대화가 가능하다. 각국의 패기있는 젊은이들의 생각을 들어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승무원은 엔터테이너
크루즈 승무원은 매우 독특한 직업이다. 짧게는 5개월, 길게는 1년 가까이 집에 갈 수 없다. 웬만한 방랑기질로는 힘들다.
그리고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누구하고나 잘 어울리는 성격을 가져야 한다. 토러스호의 승무원은 모두 400여 명. 20여 개 국에서 모였다.
스웨덴 출신의 선장을 비롯해 일본, 중국, 베트남, 필리핀, 에쿠아도르, 이란 등 전 세계의 각 곳을 망라한다. 인종의 종합전시장이 따로 없다. 한국 승무원도 20여 명이 타고 있다.
크루즈 승무원은 또한 종합 엔터테이너여야 한다. 크루즈 여행에는 각종 쇼와 공연이 쉬지 않고 펼쳐지는데 특수한 몇 가지를 제외하고 승무원들이 모두 해결한다. 악기연주와 노래는 물론 심지어 마술까지 척척 해내는 승무원들도 있다.
승무원의 직급은 일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선장(Captain), 부선장(Staff Captain), 수석항해사(Chief Engineer), 부항해사(Staff chief engineer), 호텔 매니저, 클럽 매니저 등이 간부급이고 그 외에는 일반직이다.
이들은 싱가포르에 있는 스타크루즈 본사나 한국 지사에서 면접을 본 후 취업된다. 수입은 역시 직급에 따라 천차만별. 일반직의 경우 첫 월급이 대략 800달러(100만 원) 정도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는 박봉이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 온 승무원에게는 만족스러운 액수다. 승무원끼리 의사소통은 영어로 한다. 따라서 영어회화는 필수이고 근무하는 배의 행선지에 따라 일본어, 중국어도 공부한다.
4박 5일 상품 55~71만원 봄방학 기념 50% 할인
스타크루즈가 운행하는 일본 크루즈 상품이 두 가지 있다. 부산 다대포를 출발해 고베, 고치, 가고시마를 경유해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4박 5일 코스와, 역시 부산에서 출발해 고베-벳부를 거치는 3박 4일 코스이다. 모두 토러스호가 운항한다.
4박 5일 코스는 객실에 따라 2인 1실 기준 55만(통로쪽 객실)~71만(바다쪽 객실) 원. 3박 4일 코스는 43만~59만 원이다. 4박 5일 코스는 2, 3월에는 1, 8, 15, 22, 29일에 출발하고 3박 4일 코스는 5, 12, 19, 26일 떠난다.
스타 크루즈는 이달 18~28일 출발하는 여행 요금을 50% 할인해주는 봄방학 특별행사를 실시한다. 문의 (02)752-8998, www.starcruz.co.kr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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