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토종이 씨가 마르고 있다. 밀렵과 남획으로 수백종이 멸종위기에 처했지만 관리소홀로 언제 이 땅에서 사라질지 모른다.생물다양성협약으로 자생식물에 대한 배타적인 이용권을 부여하고 있어 생태계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환경보호 차원만이 아니다. 토종을 지키지 못하면 생명공학시대에 국가경쟁력의 토대마저 무너지게 된다.
▲ 보호받지 못하는 보호동ㆍ식물
지난달 중순 강원 고성군에서 멸종위기종인 산양(천연기념물 제217호)이 폭설과 한파로 얼어죽고 철원군 민통선 지역에서는 독수리 수십마리가 굶어죽었으나 환경부가 한 일은 1회용 먹이주기 행사가 고작이었다.
강원 태백시 생태계보호구역에서 자생하는 나리군락지에는 간판만 붙어있고 관리인력은 보이지 않는다. 희귀식물이 있으니 캐가라고 알려주는 꼴이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생물종은 총 2만9,800여종. 이 중 멸종위기종(43종), 보호종(151종), 천연기념물(258종) 등으로 지정돼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는 야생 동ㆍ식물의 관리실태가 이 지경이니 나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토종이 사라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외래종이 점령하고 있다. 민물고기 50여종 가운데 다묵장어와 퉁사리 등 20여종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블루길이 판을 치고 황소개구리가 왕노릇을 하고 있다.
북한산에 서식하는 식물 648종 중 10%(64종)는 서양민들레와 개망초 등에 자리를 내주었다. 생태계의 보고라는 비무장지대에도 미국미역취 단충잎돼지풀 등 97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 역수입되는 토종
북한 장수산이 원산지인 장수만리화는 미국으로 유출된 뒤 역수입하고 있다.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장악하고 있는 '미스킴 라일락'은 북한산 정향나무가 건너간 것으로 현지에서 그루당 30달러에 팔린다.
전국 어디에서나 자생하는 원추리는 미국에서 하루백합(daylily)으로 개량돼 최고 300달러를 호가할 정도다.해마다 400여만달러를 들여 네델란드와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나리(백합) 구근은 하늘말나리, 털중나리 등 토종을 교배해 얻은 것이다.
토종의 유출이 심한 것은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특성과 오랜기간 풍화와 침식을 겪은 산성토양이어서 유럽이나 미국의 퇴적토에 비해 식물의 생명력이 강하고 유전형질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 생물표본관 하나 없는 나라
생물다양성협약에 따라 자생종에 대한 증거는 표본을 제시해야 주권이 인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생물표본관이 한곳도 없다.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20여만점을 분산관리하고 있으나 관리인력과 예산은 물론 항온ㆍ항습시설 미비 등으로 유실위기에 처해있다.
반면 미국은 1,176개의 생물표본관(자연사박물관)을 보유하고 있고 독일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도 수백개를 운영중이다.
전북대 이병훈(생물과학부) 교수는 "생물자원의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생물표본관을 건립하고 있다"면서 "표본을 수집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정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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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현기자
dejavu@hk.co.kr
■종(種) 복원은 개체수가 극히 적어 자연상태에서 번식이 불가능할 경우 인공적으로 번식시켜 방사하는 방식. 인공번식한 동물이 야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생태계의 복원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복제와는 다른 차원이다.
정부는 98년 말부터 G7과제의 하나로 '멸종위기 야생동물 복원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국립환경연구원 김원명 박사팀이 복원을 추진중인 동물은 반달가슴곰과 산양, 황새 등 3종. 야생상태의 먹이사슬과 서식범위, 유전자분석, 생존가능성 등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반달가슴곰은 안산 곰농장에서 사육중인 6마리가 우리나라 반달가슴곰과 비슷한 종으로 판명돼 새끼 몇마리를 지리산에 방사할 계획이다. 그러나 혈통의 맥을 잇기 위해 북한에서 반달가슴곰을 들여와 인공번식하는 방법도 추진중이다.
산양의 경우 6마리를 월악산에 방사했으나 등산객들이 버린 음식물을 먹는 등 야생성이 회복되지 않았으나 성공가능성이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황새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들여온 11마리 중 3쌍이 합사했으나 번식에는 실패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반달가슴곰 등이 자연번식하기 위해서는 50마리 이상 무리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복원사업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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