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홍세린. 올해 열한살. 일산 백석초등학교 5학년생입니다.나는 1월31일 'X게임 코리아 오픈' 결선에 오른 선수중 제일 나이가 어리고 키(135㎝)도 제일 작은 여학생입니다.
하지만 나보고 '땅콩'이라고 부르는 오빠들보다 더 잘 해서(3등) 오빠들 코가 납작해졌어요. 작년 12월 태국 푸켓에서 열린 '주니어 아시안 X게임'에도 참가했었는데 외국에서도 내 또래 여자선수가 안보여요. 내가 그렇게 특별한건가?
7세때 TV만화 '날아라 슈퍼보드'를 보고나서 아빠한테 "손오공 타고 다니는 거 사줘"라고 떼를 썼어요.
드디어 생일날 꿈에 그리던 '슈퍼보드'를 갖게 됐고 일산 마두광장에서 '토마토아저씨(조성삼씨ㆍ42ㆍ토마토 보드판매점 운영)'한테 보드기술을 배웠죠.
그 뒤로 수업이 끝나면 혼자서 열심히 연습했는데 심하게 넘어진 날엔 울면서 집에 들어가기도 해서 아빠 엄마가 걱정을 많이 했대요.
하지만 3년이 지난 뒤 내가 에어(Air, 공중기술)와 알리(Ollie, 보드 자체만으로 점프해 물체를 넘는 기술)를 연출하는 걸 보시고 깜짝 놀랐다는 아빠는 어느새 제 팬이 됐고 이젠 X게임 전문가예요. 하지만 사람들이 많은 지하도에서 신나게 보드를 탈 때는 함께 있기가 아직도 조금은 민망하시다나요.
엄마가 그러는데 저는 어렸을 때 인형대신 로봇을 갖고 놀았대요. 지금은 스타크래프트도 잘 하고 학교과목중엔 수학하고 과학이 제일 재밌어요.
피아노, 책읽기를 좋아하는 쌍둥이 언니(홍세진ㆍ11)랑은 완전히 딴판이래요.
저는 지금도 보드타고 하늘을 나는 '손오공'이 되는 게 꿈인데요. 아빠한테 스케이트보드 프로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니까 아빠가 고민을 하시는 것 같아요. 과학자도 되고 싶은데. 그럼 어떻하지? 좀 더 생각해볼까. 치키치키 차카차카 쵸코쵸코!
"아빠, 그러면 '보드타는 과학자'가 될거야. 어때 멋있지!"
X게임에 대한 세대간 인식차이는 매우 크다. X게임이 청소년의 건전스포츠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이해가 필요하다. 한 청소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X게임에 대한 부자간의 대화를 정리한다. 편집자주
"아빠. 혹시 X게임이라고 들어보셨어요?"
"X자 붙는 것치고 좋은 게 없는데. 혹시 치고 때리는 컴퓨터게임 얘기하는 것 아니냐?"
"(절망스런 표정) X게임의 X는 '익스트림(Extreme)'에서 따온 X에요. 극한스포츠, 모험스포츠를 말하는 건데.."
"별거 아니네. 아빠도 X게임을 즐겼어. 해병대 시절의 유격훈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단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그 혹독한 유격체조.."
"(한숨을 쉬며) X게임엔 스피드와 스릴, 그리고 재미가 있어야 돼요. 인라인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 자전거스턴트가 흔히 X게임의 '빅3'로 불려요.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묘기가 얼마나 멋진데요."
"아. 얼마전 TV에서 봤던.. 그게 서커스지 어디 스포츠냐?"
"요즘 제 또래에서는 최고 인기예요. 젊은 세대의 도전정신을 키우는데 제격인 '21세기 스포츠'라는 얘기도 못들으셨어요? 아빠는 역시 21세기에 적응하려면 한참 멀었어."
"헬멧쓰고 길거리에서 스케이트보드 타는 아이들은 왠지 불량스러워 보이더라."
"놀이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아빠 같은 인식 때문에 친구들이 탈선에 빠지는 거라구요. 땀흘리며 운동하는 애들은 어디 가서 나쁜 짓 안해요."
"그나저나 왜 갑자기 X게임 타령이냐?"
"저도 배우고 싶은데... 장비가 없으니까 그렇죠. "
■X게임이란
산악자전거(MTB)와 인라인스케이트, 암벽등반, 스카이다이빙 등 극한ㆍ모험스포츠를 뜻하는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의 약어이다.
1960~70년대 스케이드 보드, 스턴트자전거(BMX)가 개발되고 80년대 초 '롤러블레이드사'가 인라인스케이트를 내놓자 미국에서는 80년대 초반부터 프로선수들이 생겨났다.
90년대들어 종목별 경기를 함께 개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95년 7월 미국의 스포츠전문채널 ESPN이 각종 모험스포츠를 하나로 묶어 처음 창설한 대회이름이 바로 'X-Games'였다. 이 대회명은 현재 보통명사처럼 사용될 정도로 당시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X게임은 전세계 동호인이 5,000만명을 넘어서는 등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기교로 지구촌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어 '21세기 스포츠'로 불린다.
미국청소년들 사이에서는 X게임의 인기가 슈퍼볼, 월드시리즈를 앞지르고 있다. 국내에는 약 2만명 정도의 동호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스노보드에서 번지점프, 트라이애슬론 등에 이르기까지 넓은 의미로 다양하게 쓰이지만 보통 인라인스케이트(Blade), 스케이트보드(Board), 자전거스턴트(BMX)가 X게임의 가장 대표적인 'B3'로 불리고 있다.
인라인스케이트는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한편 ESPN과의 상표권 문제가 결부되어 있어 'X게임'이라는 용어보다는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정식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릴과 자유 창조성이 매력
■왜X 게임인가
X게임, 21세기 젊은이들의 화두이다. 큰 부상 위험에도 아랑곳없이 무모하리만큼 자신의 몸을 내던져야 하는 이 스포츠에 전세계 젊은이들이 매료되는 이유는 무얼까?
BMX선수 전상철(28)은 X게임의 '정체불명에서 비롯되는 창조성'에서 답을 찾는다.
X게임의 주종목 'B3'는 모두 파생종목. 인라인스케이트는 스피드스케이팅의 여름훈련용으로 탄생된 것이고 윈드서핑을 지상에서 즐기도록 고안된 스케이트보드와 싸이클에서 파생된 스턴트자전거(BMX)도 마찬가지다.
"정체성도 없고 규칙도 없어 모든 변화를 수용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한다. X게임은 기존의 2차원스포츠를 3차원으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한편 사회적 변화에 따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한 사회학자는 "21세기의 청소년은 X게임을 통해 하이테크적, 비선형적 문화에 대처하는 기술을 배운다"고 주장한다.
불연속성으로 점철된 도시환경과 타협하고 그 속에 몰입된다는 지적이다. 외딴 곳에서 X게임이 성행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체불명의 X. 하지만 X게임에는 '빠른 스피드와 나를 독특하게 표현할 줄 아는 노력, 그 누구의 힘도 빌려서는 안된다'는 게임의 규칙이 있다. 결국 그 규칙이 '젊음'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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