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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한국인 이렇게 산다] (5)바뀌는 만남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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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한국인 이렇게 산다] (5)바뀌는 만남의 양식

입력
2001.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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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결혼정보회사에 회원으로 등록한 회사원 이윤정(28ㆍ여)씨. 자신이 맞선 보러 다니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취향이나 성격, 경제적인 능력 등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룬 사람을 소개 받기 때문에 내 사람을 찾을 확률이 높다"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있다.▼탐색기간은 짧을수록 좋다 ▼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나 친해지기까지는 오랜 탐색기간이 필수. 하지만 직장 일에 바쁘고 마음이 급하다 보니 이씨와 같이 주저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만남을 선호하는 추세다.

선우에서 커플매니저로 일하는 전선애(31) 대리는 "원하는 조건의 사람을 솔직하게 제시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한 '이 사람이다, 아니다'를 결정하는 시간도 짧아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는 새로운 통로로 자리잡고 있는 인터넷 채팅방에서 역시 '서로간의 탐색'은 초스피드로 이루어진다. '몇살이야?' '학교는 좋은 데 다녀?' '너 폭탄은 아니지?' '너 차는 있니?' 등 대화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에 관해 알아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만남을 결정하는 시간도 오래 끌지 않는다. '제 나이는 26. 그치만 이 나이루 보는 사람은 없어요. 키는 한 175. 등발은 없어요. 적당한 체격 . 몸무게는 한 62정도. 옷은 깔끔한 어떤 옷이든 머리는 짧지는 않구 옅은 갈색으로 염색. 만나고 싶으면 빨랑 서둘러서 멜 보내요.' 채팅사이트 스카이러브를 통해 주고 받은 프로포즈 메일이다.

이처럼 빨리 알려주고 빨리 결정하는 것이 요즘 만남의 방식. '번개팅'(통신상에서 알게 된 사람을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는 일)은 말 그대로 번개처럼 이루어진다.

▼만남의 홍수 ▼

그동안의 만남은 혈연이나 학연으로 얽히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하고 사람들 사이의 공간적 제한이 무너지자 범위가 한 없이 넓어지고 있다. 영화 '접속'에서와 같은 PC통신 채팅은 이미 골동품처럼 느껴질 정도.

자신만의 캐릭터를 이용하는 아바타채팅, 얼굴을 보며 하는 화상채팅, 음성채팅 등 다양한 인터넷 채팅 사이트가 홍수를 이루고 있으며 각종 동호회 활동으로 세대차를 뛰어넘어 친구를 사귈 수 있다.

휴대폰을 끼고 사는 10대들은 문자팅(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이용한 미팅)에 푹 빠져 있으며, 전화 사서함을 통해 이성친구를 소개 받기도 한다. 최근 이용자가 늘어나고 있는 인스턴트 메신저를 이용해 국경을 뛰어넘는 국제적인 우정을 쌓아 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인터넷이 넓혀 놓은 만남의 기회들은 즐거움의 수준을 넘어서 과도한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 영화 동호회의 시솝을 맡고 있는 회사원 장유식(30)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 있는 영화 번개에 소속동호회의 정기모임, 회사 회식, 대학 동창 모임 등까지 겹치면 약속이 없는 날이 거의 없다"며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피곤할 지경"이라고 말한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39)교수는 "요즘 사람들은 갑자기 너무 많은 관계가 형성되는 데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단순하고 고정된 사람만 만나던 예전의 인간관계로 회귀하고픈 욕구를 느끼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동창찾기 사이트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도 이 같은 이유라고 설명한다.

▼만남의 편식 현상 ▼

사이버문화연구실 라도삼(38) 연구원은 요즘의 만남을 '끼리끼리 성향'으로 설명한다.

자신의 관심사와 다른 이는 '생까버리고'(무시하고), '썰렁하다'며 구박하기 일쑤고 '별꼴이야'라며 야유를 보내거나 심지어 자신의 취향이 아닌 이성에 대해서는 '폭탄'이라 이름 붙여 앝잡아 본다는 것이다. 채팅 사이트에는 '폭탄 감별법' '5분 대화로 폭탄을 가려내는 법' '폭탄연구법' 등 다양한 노하우가 떠돌고 있을 정도다.

이 같은 경향은 인터넷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분석이다.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이야기만 할 수 있는 인터넷 동호회 문화가 한 몫을 했다는 것.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과 해외유학파 등이 주축이 된 사교모임 '클럽프렌즈'(www.clubfriends.co.kr)는 인터넷을 통해 회원을 모집,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500명의 유료회원을 모집했다. 회원 가입을 위해서는 일정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며 인터뷰도 거쳐야 한다. '자신과 어울리는 친구'를 찾는 신청자들로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한 달에 한번 여는 파티는 성황을 이루고 있다.

채팅 방들의 방제(채팅방의 제목)만 봐도 만남에 대한 편식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서울여, 79년이상, 165이상, 긴생머리만 들어오세요' '신촌에서 학교 다니는 대딩(대학생)들만 어숴와' '여의도에서 회사 다니는 사람 중 저녁에 영화 볼 사람' 등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만 알고 지내겠다는 것이 요즘 만남의 특징이다.

문화평론가 서동진(35)씨는 "자신을 알리고 사랑 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따뜻한 만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사이버 로맨스'를 꿈꾸시나요

온라인에서 만나 결혼에까지 이르는 '사이버커플'이 증가하면서 '인터넷을 통한 로맨스'를 꿈꾸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미팅만을 위한 마담뚜 사이트들도 부지기수고 채팅사이트, 각종 인터넷동호회, 인스턴트 메신저 등은 이들의 만남을 중개하는 뚜쟁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번개팅은 이제 이성을 만나는 중요한 통로가 되고 있다.

결혼 정보회사 선우에서 전국의 미혼 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과반수가 넘는 60.2%가 '채팅에서 알게 된 사람을 직접 만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냥 심심해서'(39.5%), '호기심으로'(12%)라는 대답에 이어 '이성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말한 사람도 10%나 됐다.

사이버상에서 만난 사람과 로맨스에 빠져들 가능성에 대한 연구결과도 있다. 미 렌셀러 폴리테크닉대의 조지프 월더 교수는 'Journal of Online Behavior'를 통해 "온라인에서 시작한 관계가 실제 만남으로 이어져 로맨스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로 "일상생활의 우울함이나 나쁜 일이 PC통신이나 인터넷 등을 통한 인간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전자 우편이나 온라인 채팅을 통한 만남이 실제 만남보다 훨씬 유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의 만남과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과는 간극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최근 발간된 '사이버공간에는 또 다른 내가 있다'(저자 황상민)에서 저자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사람들은 '실제 모습이 아닌 자신이 상상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사이버 공간에서 누군가와 대화할 때는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온라인에서 상대를 만날 때 어느 정도 솔직한가'라는 질문에 총 1,000명의 응답자 중 15%만이 '매우 솔직하다'고 대답했으며 '주로 거짓말을 한다'라고 대답한 이들도 10%나 됐다.

PC통신이 유행하던 시절부터 "번개팅은 지겨울 만큼 많이 해 왔다"고 밝힌 대학원생 김윤영(24)씨는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되면 실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털어놓았다.

인터넷을 통한 이성교제가 긍정적인 측면만을 지닌 것은 아니다. 채팅사이트들은 미성년자들도 쉽게 불건전한 교제에 빠져 들 수 있는 통로로, 심지어는 원조교제의 온상처럼 변질되고 있다.

나이 어린 초ㆍ중ㆍ고교생 대상의 채팅방에서도 음란한 대화 내용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으며 '몸매불문, 나이불문, 오늘 밤 함께 할 사람', '설 사는 유부남, 외로운 중딩 들어와', '알바녀 구함, 20만원' 등의 방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처럼 규제의 한계를 넘어선 불건전한 사이버 교제는 '사이버로맨스'의 이면에 있는 추악하고 음산한 모습이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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