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뒤에는 군이 있다."압두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계엄령) 발령을 모색하는 등 탄핵 정국을 정면 돌파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와히드는 의회가 자신의 정치자금 의혹과 관련된 보고서를 채택하기 직전인 지난달 31일 군사령부에 비상사태 선언을 제안한 바 있으며 이후에도 이를 적극 검토해왔다고 인도네시아 언론들이 8일 보도했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은 의회 해산권이 없지만, 1959년 비상사태법을 근거로 의회 해산 및 6개월내 총선거를 실시할 수 있다.
와히드의 최근 행적을 보면 이 같은 정면 대결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와히드는 7일 대통령 퇴진을 요구해온 유스릴 이자 마헨드라 법무ㆍ인권부 장관을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격 경질했다.
와히드는 이어 이날 자신의 고향인 동(東) 자바의 수라바야에서 5만여 명이 대통령 지지 폭동을 일으키자 이를 사실상 방조했다.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폭도들이 제 2당인 골카르당 당사를 불태웠음에도 와히드는 "점증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대가"라며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수세에 몰렸던 와히드가 갑자기 강경 일변도로 선회한 것은 군이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군의 대변인격인 아구스 위요요 중장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군의 충성심에는 변함이 없다'고 공언했다. 지난 1일 의회에서 비선출직 군 출신 의원 38명이 부패의혹 조사보고서를 인정하면서 촉발된 군부 동요 논란이 마무리된 셈이다.
와히드가 반격에 나섬으로써 탄핵을 앞당기려는 의회와의 관계는 더욱 악화하고 있다.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이 이끄는 최대 정당 민주투쟁당(PDIP)과 골카르당 등은 이미 탄핵 재판 조기실시를 위한 서명작업에 돌입했다.
아미엔 라이스 국민협의회(MPR) 의장은 "전체 의원 500명 중 과반수가 서명할 경우 특별 총회의 소집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골카르당 당수인 악바르 탄중 하원의장도 "와히드는 결코 임기를 채울 수 없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통령과 의회가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양측이 정치적 대타협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와히드의 강경 대응이 반대파를 압박, 정치 타협의 물꼬를 틀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대 변수인 메가와티 부통령이 명확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는 등 향후 권력 판도가 극도로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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