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모순이 투영 중남미 문학의 원천은?소리없이 밤새 내려 문을 열 수 없을 만큼 가득 쌓인 노란 꽃잎, 초콜릿을 먹고 공중으로 떠오른 신부, 4년 넘게 내리는 비, 번데기처럼 줄어든 할머니.
콜롬비아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작 '백년동안의 고독'에 등장하는 신비롭고 아득한 풍경들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실제 역사 위에 포개지면서 더욱 아스라해진 이 환상과 사실의 경계가 곧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현실과 상상력의 엇갈림이었던 셈.
그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좌익 성향의 주간지를 창간하던 해 멕시코시티 근교에 호화 별장을 사고, 좌익 게릴라 단체에 헌금을 하면서 인터뷰나 초청강연에 터무니 없는 액수를 요구한 마르케스.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 정책을 맹렬히 비판하면서 미국 문화 자체에 대해서는 열광하는 그의 모순은 어쩌면 라틴 아메리카의 운명과 닮았는지 모른다.
김창민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등이 엮은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과 사회'(까치 발행)는 인간의 갈등과 모순이 복잡하게 투영된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따라가며 이 역설적 진실을 추적한다.
마르케스를 비롯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옥타비오 파스, 파블로 네루다, 카를로스 푸엔테스 등의 거장이 활약한 이 대륙의 문학에 '제3세계' 혹은 '변방', '비주류' 등의 수식어를 붙인다면 "라틴 아메리카인에 대한 모독"이다. 러시아와 영미문학에 이어 현재의 세계문학을 선도하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파란만장한 인간 실존의 갈등을 장대한 스케일과 독창적 형식으로 담은 이 새로운 주류 세계문학의 바탕은 무엇이었을까. 서구 제국주의, 민중주의, 군사독재,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이 교차한 이 대륙의 역사 자체를 모자람 없이 보여준다.
고대의 신비와 잔인한 현실의 교차, 타자와의 만남과 충돌 등의 진폭에서 부대끼고, 고민하며 성장한 문학이었던 것이다.
책은 멕시코, 아르헨티나, 쿠바, 콜롬비아 등 10개국 작가 22명의 삶과 작품세계를 국내 전공자들이 각각 맡아 다루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얼룩진 육체와 그 정신세계를 훑어간다.
그 위상에 비해 국내에서는 변변한 작품론 하나 없는 현실에서, 라틴 아메리카 중요 작가들을 정리한 까닭에 입문서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사유의 미로를 만들며 20세기 문학을 창조한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 뿌리를 찾는 고아처럼 픽션과 논픽션, 인디오 문화와 서양문화 넘나든 멕시코의 푸엔테스, 은둔자에서 투사로, 다시 화해와 성숙의 세계로 나아간 칠레 시인 네루다, 사회적 열정과 시적 열정사이에서 분투한 멕시코 시인 파스 등을 통해 문제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자신과의 투쟁에서 시가 탄생하고 타자와의 논쟁에서 정치가 탄생한다"는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말대로 정체성을 찾기 위해 자기 자신, 그리고 타자와 끝임 없이 투쟁한 창조적 인간의 문학적 궤적인 것이다.
마르케스 부분을 집필한 저자 서성철씨의 평가는 이렇다. "마르케스를 만났을 때, 그의 정치적 행동에 관해 벌였던 논쟁이나 허사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는지 깨달았다.
현실과 상상력의 갈림길에서 고민했고, 또 그 간극을 메우고자 싸웠던 사람, 그것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갔던 사람, 그것이 마르케스의 진면목이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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