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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뉴아트 작가와 현장] (10)英 '장엄한 인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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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뉴아트 작가와 현장] (10)英 '장엄한 인체' 전

입력
2001.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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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현대미술은 늘 눈을 자극한다. 토니 블레어 총리의 '재미 있는 영국(Cool Britain)'을 떠올리며 런던 땅을 밟았다면, 미술에서는 이러한 기대를 접어야 된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재미보다는 파격과 충격이 관객을 압도하기 때문이다.최근 헤이워드갤러리에서 열렸던 'Spectacular Bodies'(장엄한 인체)전도 이러한 영국 미술의 특징을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현재까지 우리 몸의 예술과 과학'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전시회는 많은 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미술의 공식을 무너뜨렸다.

첫번째 전시실인 'Divine Machine'(신성한 기계)에 들어서자마자 관객은 의학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던 17~18세기의 각종 인체 모형들이 미술전시회의 이름으로 나온 것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다.

의학도들의 생리학 약리학 병리학 학습용 자료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밀랍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체의 작은 조직, 혈관, 장기들은 갤러리 안에서 혹시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까지 밀려온다. 펜으로 스케치한 인체 해부도는 부위의 명칭까지 상세하게 적혀있다.

팔다리는 없고 간, 창자, 위 같은 장기만 극대화시켜 제작된 모형도 있고 심지어 만삭 임산부의 하반신만을 적나라하고 정교하게 본뜬 모형도 있다.

'절단된 두개골'등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건축가였던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 그림이나 네덜란드의 렘브란트가 그린 '데이만 박사의 해부'라는 작품도 볼 수 있다.

외과의사들이 환자를 둘러싸고 진단하고 있는 광경 등을 그린 그림도 전시돼 있다.

심지어 중세 유럽에서 성행위나 고문에 사용했던 이상한 기구들까지 전시돼 있다.

주최 측에 의하면 이 진귀한 밀랍모형, 조각, 판화, 서양화, 드로잉들은 이탈리아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호주 헝가리 네덜란드 등 전세계 80개 미술관 및 개인 컬렉션으로부터 대여해온 것들이다.

존 아이작스, 캐더린 도슨, 게하르트 랑, 빌 비올라, 토니 오슬러 등 8명의 젊은 작가들이 꾸민 전시실 'New Bodies'(새로운 인체)에 들어서면 영국미술은 자극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잔인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피부가 벗겨져 근육과 뼈를 드러낸 채 피가 흥건히 고여있는 침대에 누워있는 인간의 몸, 포르말린 용액이 채워진 커다란 유리관 속에 보관된 태아의 얼굴 등이 실리콘, 파이버글라스 등으로 만들어져 전시돼 있다. 또 고양이와 인간의 얼굴 모습을 합성해 만든 반인반수의 다양한 모습 등이 사진을 통해 투영된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어린 딸의 울부짖는 모습이나 컴컴한 수술실에서 빨간 조명을 받으며 리드미컬하게 뛰고 있는 인간의 심장을 담은 비디오를 통해, 인간이 몸으로 겪는 여러 고통을 대리 체험해 볼 수도 있다.

우리 인체가 예술적, 해부학적으로 얼마나 놀라운 기계인지 비디오, 사진, 설치작품 같은 육체적 공감이 빠른 새로운 매체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에 대한 이같은 노골적인 미술적 접근은 머리카락 한 올도 소중히 여기는 우리 정서에서는 인체에 대한 찬사라기보다는 놀라움이 앞서는 충격적 전시회였다. 예술은 주관적, 과학은 객관적인 것이라는 그 동안의 통념도 무너뜨려졌다.

의학과 미술의 크로스 오버를 시도한 과감한 기획, 정신과 육체, 동양과 서양을 망라한 전시회의 스케일에 놀라면서도, 젊은 작가들의 다소 엽기적 실험 작품들은 너무나 부르주아적인 발상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떨칠 수 없었다. 기계화 문명에 대한 그들 나름의 반발이요, 거부의 몸짓이겠지만.

■작가 존 아이작스

'Spectacular Bodies'전에서 보여주듯 존 아이작스(34)의 작품은 의학적 지식이 없는 작가라면 도저히 내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의학을 토대로 한 인간의 사고와 활동"을 자신의 작품 컨셉으로 밝히는 그의 작업실에는 미술책이 아닌 의학교과서가 널려져 있었다.

"대학에서 처음엔 생물학을 전공했어요. 그 뒤 프랑스에서 미술학교(디종 에콜 드 보자르)를 졸업했습니다.

"영국의 대표적 nBa(new British artists). yBa는 데미안 허스트가 1988년 기획했던 프리즈전에 참여했던 골드스미스 대학 출신만 가리키는 말로, 존 아이작스는 이들보다 약간 젊은 층에 속한다.

그는 자신이 조각작품을 "인체에 대한 감성적 표현"이며 "관객과 가장 빠르고 가깝게 소통하는 통로"라고 말했다.

유머와 우울이 공존하는 그의 작품은 대체로 그로테스크하다. 발만 남기고 피부가 벗겨진 채 누워 있는 인체나 바닥에 척 늘어질 정도로 살찐 배를 가진 인간의 누운 모습 등 을 표현하기도 하기도 하고 때론 인간 대신 말 돼지 새 같은 동물을 등장시켜 역시 엽기적 장면을 연출해낸다.

"무엇을 생각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과정이 나의 작업"이라는 그의 말에서 현대미술의 분석, 해체의 개념을 읽을 수 있었다.

후원 LG상남 언론재단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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