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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 젊음 믿고 내주었던 외상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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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 젊음 믿고 내주었던 외상술

입력
2001.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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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이 다가오면서 세상도 들떠있는 지난해 12월31일 자정께였다. 여느 날과 달리 4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가 서러워 내가 운영하는 텅 빈 가게 한 귀퉁이 소파에 몸을 묻은 채 상념에 젖어 있었다.그렇게 시간이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무렵 한무리의 청춘남녀가 왁자지껄하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 왔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신나게 술과 안주를 주문했고, 활기 넘치는 젊은이답게 기분좋게 떠들고 장난치며 술과 안주를 해치웠다.

나는 우울해져 있던 나까지 유쾌하게 만드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술자리가 끝날 시간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들의 술자리가 파하고, 역시 떠들고 나오면서 그 중 한 친구가 주저없이 신용카드를 불쑥 내밀었다.

받아 그어보니 '한도초과.' 그 또한 분별없는 젊음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며 기분좋은 목소리로 "손님, 한도초과네요"하니까 일행 중 두 명의 여자가 화음까지 맞춰가며 약간 발그레한 얼굴로 "아저씨, 젊음을 믿어봐 주세요"한다.

그래서 이럴 때 흔히 대신 보관하는 핸드폰이나 신분증을 받지않고, 다음날 꼭 외상값을 갚겠다는 말을 믿고는 웃는 낯으로 문 밖까지 따라나가 그들을 배웅했다.

그들을 보낸 후 나는 또 한참을 가게에 남아 내 젊은 날을 생각하면서 행복해하다가 날이 밝아서야 집으로 향했다.

하루, 이틀, 사흘.. 한참이 지나도 그들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젊었을 때는 외상술을 먹고도 돈이 없으면 전화라도 했는데"라고 생각하며 속절없이 전화기만 바라보기도 했다.

또 문득문득 "그들이 나를 아주 맹한 사람으로 본 것은 아닐까, 그래서 돈을 아주 갚지 않을 작정을 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지기도 했다.

아닐 것이다. 생활이 바빠 그날 일을 잊고 지내는 것일 게다. 언제라도 그 외상값이 기억이 나면 가게의 나무문을 열고 들어와 외상술값과 함께 희미해져 가는 젊음에 대한 신뢰까지 다시 돌려 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외상값보다 믿음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다"고, "자네들의 그 유쾌한 얼굴이 다시 보고 싶었다"고 말하며 기분좋게 그들과 술자리를 함께 할 것이다.

그들을 기다린 지 한달째, 나는 오늘도 전화기 옆에서 가게의 갈색 나무문을 바라보며 그 젊음을 기다리고 있다.

김판건ㆍ부산 부산진구 범천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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