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사는 격동의 연속으로 점철되어 왔다. 망국과 식민지 그리고 광복과 분단은 세계사에서 가장 비참했던 한 민족의 삶을 표현하는 용어였다.더구나 사상 갈등과 동족상잔의 전쟁은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했다. 우리와 동시대인이 겪은 파란만장한 삶을 들으면 가슴이 저려온다.
요즘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성혜랑 자서전 '등나무집'(지식나라)은 그런 절절한 삶의 한 자락을 담고 있다.
■등나무집의 모체는 저자의 어머니인 개벽지 여기자 김원주가 써놓은 수기이다. 이 책은 평안도 벽촌을 내리누르는 가난과 남녀차별의 사악한 관행에 맞서 싸워온 어머니의 반생으로 시작한다.
광복이후 김원주는 좌익투사로 나섰고, 월북 이후엔 빨치산 교육기관인 강동학원 강사와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국제부장으로 일했다.
6ㆍ25 때는 남하해서 강원도의 당보 주필을 맡았다. 짧은 수기에 시대와 개인의 관계를 압축 설명하고 있다.
■저자 성혜랑은 70년대 북한의 유명한 소설가였다. 동생 혜림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가 이 책에서 뛰어난 인물묘사와 줄거리 구성을 통해 문인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등나무집은 저자가 살았던 서울 왕십리 옛집으로 추억이 가득한 마음의 고향이었다. 어머니 김원주는 북한에서 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최고라는 평가를 내렸고, 성혜랑은 지금 그런 크기의 대하소설을 쓰고 있다고 한다.
■성혜랑의 딸 이남옥도 '황금새장'이란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다. 망명 후 평양에서 보낸 생활이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동시에 북한사람들도 "가족과 함께 웃고 울며 노래를 부른다"고 알리는 것이 "조국에 유익한 일을 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라고 한다.
여성 3대의 삶 속에 담긴 한국현대사의 한 단면을 우리는 곧 모녀의 글을 통해 보게 될 것이다. 그 책의 내용에서 좌익을 선택한 경상도 대지주가의 종손인 성혜랑 아버지, 성유경이 걸어온 인생유전이 어떻게 투영되어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최성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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