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부동산신탁(한부신) 부도에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가 단호하다. "사적 상거래로 인한 피해를 정부가 구제해 줄 수는 없다." 이른바 '원칙론'이다.피해보상을 해 줄 경우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다는 정부의 주장도 일면 타당한 듯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강조하는 '원칙'이 어딘가 이상하다.
언제부터 그렇게 원칙에 철저했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당장 벌어지고 있는 대우처리 문제만 살펴 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정부는 대우그룹의 부실, 불법 경영을 문제삼아 전 경영진을 구속까지 시켜 가며 책임을 묻고 있다. 민간기업에 대해 이렇듯 '무한책임'을 강조하는 정부가 한부신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수많은 아파트, 상가 입주 예정자들이 돈을 떼이게 됐고 전체 피해액도 1조7,000억원으로 추정되는 등 국민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막대함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한부신은 공기업임을 자처하며 사업을 진행해 왔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공사를 벌이면서도 상가 계약자 등에게는 '정부가 뒤에 있는데 뭘 걱정하느냐'며 엉터리 호객행위를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기업의 사적인 상거래일 뿐'이라는 정부의 논리에 따른다면 한부신은 정부를 사칭해 명백한 거짓말을 한 셈이다.
그렇다면 모(母)회사인 한국감정원과 한국감정원의 주인인 정부는 이런 불법행위를 눈감아준 죄를 피할 수 없다. 한부신이 91년 설립됐으니 무려 10년 동안이나 잘못된 영업을 해왔다.
서민들이 한부신을 공기업처럼 여겼다는 사실을 정부에서 그 동안 몰랐을 리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감정원, 금융감독원, 건설교통부 등 관계기관은 그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부도가 나고 피해자가 속출하자 이제 와서 원칙을 들고 나온다.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원칙'은 그 10년 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궁금하다.
진성훈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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