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보도를 보면 국내의 국립연구기관이 IMF로 외화가 부족하자 그동안 버리거나 퇴비로만 써왔던 음식물찌꺼기를 가축의 사료로 사용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면서 쇠고기가 들어간 음식물찌꺼기를 소사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것을 먹은 수백 마리의 소가 광우병에 걸렸을 것이며, 그것을 이미 도축하여 국민이 먹었기 때문에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식이다.지금 우리는 되새김질하는 소나 양과 같은 초식동물이 동종의 동물성 사료만 먹으면 무조건 광우병에 걸리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통념이다.
원래 양이나 염소에는 스크래피(Scrapie) 프리온(Prion)라는 병이 1936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영국에서 처음으로 그동안 버려왔던 양의 내장과 뼈를 소사료의 단백질원으로 사료에 혼합하면서 광우병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다시 말해 양의 내장에 있던 스크래피가 소에 감염되어 발병했다는 얘기다.
소의 광우병(mad cow disease)은 이것이 학계에 정식 보고된 1986년 이전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질병이다.
자연적으로는 소가 양을 잡아먹을 일이 없었지만 인간의 편협한 과학적 지식 때문에 소가 양을 잡아먹은 결과가 돼 스크래피가 옮겨가게 된 것이다.
또 소가 자기와 동종인 소의 육골분을 먹었다고 광우병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광우병에 감염되어있는 소의 육골분을 먹어야만 광우병이 발생한다.
일찍이 양모산업이 발달했던 영국이나 호주에서는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를 자주 볼 수 있다. 이 양에서는 스크래피라는 병이 발생하지만 소에서 광우병이 집단적으로 발병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유럽의 소에서는 광우병 사태가 일어나는 것일까.
첫째, 스크래피에 감염된 양의 내장을 분쇄하여 사료에 섞어서 많은 소들에게 골고루 먹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원래 병원체는 일정한 숙주(사람이나 동물)를 갖고 있는데 하나의 병원체가 다른 숙주(소)에 적응할 때 처음에는 상당히 치명적 양상을 나타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차츰 그 병원체는 자기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장소인 숙주가 절멸되면 자기자손도 살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자연 덜 치명적인 병원체로 유전적 진화를 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막연히 음식물 찌꺼기 사료와 광우병을 연결짓는 것은 무리가 많다.
스크래피 프리온은 매우 신비한 병원체이다.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세균들은 핵을 갖고 있어서 핵분열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분열한다.
그러나 프리온은 아무런 핵산도 가지고 있지 않은 단백질인데 살아있는 세포 내에서 증식하고 마침내 세포를 파괴한다. 그 과정은 매우 긴 시간동안에 이루어진다.
사람이나 동물의 체내에는 원래 프리온 단백질이 존재한다. 그런데 스크래피 프리온 단백질이 사람이나 동물의 체내에 들어오면 정상 프리온 단백질을 스크래피 프리온 단백으로 변형시키고, 이 변형된 단백질은 정상세포를 파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리온병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공기전염이나 접촉만으로는 감염되지 않아 거의 안심할 수 있다. 따라서 소에서 추출한 혈장이나 젤라틴같은 물질들이 화장품으로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인간피부는 각질층으로 덮혀 있어 프리온이 뚫고 들어올 수 없다.
일반적으로 분자량이 500정도인 물질은 각질층이 통과시키지만 1000정도가 되면 통과하기 힘들다. 그런데 스크래피 프리온 같은 단백질은 33000∼35000정도의 분자량을 가지고 있어서 정상적인 피부로는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직접 감염된 소를 먹지만 않는다면 광우병에 대한 지나친 공포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영순 서울대 수의과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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