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6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역점을 둔 대목은 ▦현 국가위기의 진단과 처방 ▦국민우선 정치(People First)란 슬로건으로 요약되는 정치 대혁신 ▦언론자유 보장 ▦대북문제에 관한 입장정리 등 4가지다.이 총재는 "3년 전 이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국민 앞에 약속했지만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는 신(新) 권위주의와 신(新) 관치경제로 후퇴했다"면서 "오늘의 위기는 이 같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퇴보에서 비롯됐다"고 규정했다.
이 총재는 이어 "위기극복을 위한 진정한 국정쇄신을 기대했던 국민에게 이 정권은 느닷없이 강한 정부를 표방하고 나섰다"며 "자기 편한 대로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 강한 정부냐"고 비난했다.
이 총재는 특히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민주주의의 일대 위기상황으로 규정했다.
이 총재는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언급한 바로 그날 밤부터 공영 방송들이 연일 일부 신문사들을 맹비난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지난 7년 동안 하지 않았던 세무조사가 갑자기 시작됐고, 이 정권의 실정을 비판했던 언론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세무조사가 아무리 합법적인 것이라 해도 그것이 정당하지 않은 목적, 즉 언론을 제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될 때에는 그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원칙이며, 같은 맥락에서 이번 세무조사는 정당성을 결여한 언론탄압이므로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총재는 또 과거회귀의 악순환을 탈피하기 위해선 정치 대혁신이 필요하다면서 국민우선 정치와 제도화된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민우선 정치란 말 없는 대다수 국민들의 민생과 고통을 걱정하고 치유하는 정치이며, 정치자금법 부정부패방지법 정치보복금지법 선거법의 재ㆍ개정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자는 제안이다.
대북문제는 마지막 순간까지 퇴고(堆敲)를 거듭하며 수위를 조절했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서울 답방의 경우 이 총재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6ㆍ25 전쟁 등 과거사에 대해선 "방한해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지 주시하겠다"고 선을 쳤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의 시기와 방법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던 이전 입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서울 답방 때 여기에 대해 답해야 한다는 의미"라는 부연설명이 뒤따른다.
국보법은 연설 직전의 총재단 회의 때 비로소 최종 문안이 결정됐다.
전날 저녁까지 '득 될 게 없는 사안' 등의 이유를 들어 "그냥 넘어가자"는 의견과 "원내 제1당 대표 연설에서 뺄 수는 없다"는 의견이 맞섰으나 결국 후자로 기울었다.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민주.자민련 반응
민주당은 6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대해 "왜곡된 현실인식이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은 "예산을 횡령한 안기부 선거자금 사건을 정치보복이라고 생각하는 발상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정대철(鄭大哲) 최고위원은 "야당 총재로서 여당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상상(相生)의 자세가 결여됐다"고 비판했다.
'2월 구조조정 마무리는 허언(虛言)'이라는 이 총재의 주장에 대해 강운태(姜雲太) 제2정조위원장은 "2월까지 기본틀을 마련, 상시적 개혁 시스템을 가동한다는 것이지 2월까지만 개혁을 한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민주당 대변인실도 4건의 성명ㆍ논평을 쏟아 내며 이 총재 연설내용을 조목조목 문제 삼았다. 김영환(金榮煥) 대변인은 성명에서 "남북간 긴장완화에 대해 아무런 대안 없이 비판만 한 데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현미(金賢美) 부대변인은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국민여론과 동떨어진 '나홀로' 생각"이라고 날을 세웠다.
한편 자민련 변웅전(邊雄田)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 총재의 정치대혁신 제안은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안기부 선거자금 사건을 야당탄압,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탄압, 북한지도자 서울답방을 정권연장 수단으로 본 것은 단편적 인식으로 진정한 발상의 대전환이 아쉽다"고 꼬집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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